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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플러스 <103> 경주 남산이 작은 산에, 이 많은 염원 숨었을줄이야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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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2.14  16: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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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 삼존불 특유의 미소는 잃었으나 불상은 신라 최고위층 귀족의 화려한 복식을 입고 있다. 협시보살은 미륵반가사유상의 원형이라는 설이 있다.


‘절은 밤하늘의 별처럼 총총하고, 탑은 기러기처럼 줄지어 늘어섰다.’

삼국유사는 불교를 국교로 채택한 신라 경주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다. 별만큼 절이 많고 철새처럼 탑이 많다는 뜻이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황룡사 같은 거대 절과 황룡사지 9층 석탑은 태양에 비유할 것이고, 불국사는 달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경주 남산은 신라 왕궁인 월성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그렇게 불렀다. 멀리서 보면 별 볼품이 없는 그렇고 그런 산이다. 최고봉 고위봉의 높이가 494m에 불과하고, 특출하게 조형미를 갖춘 기이한 바위들도 없을 뿐더러 아찔하고 간드러지는 절정의 풍광은 더더욱 없다.

그러나 산에 들면 이런 생각은 싹 사라진다. 고위봉과 금오봉을 기준으로 40여개의 산줄기 골골에 신라인의 흔적, 불교유적이 그야말로 은하수처럼 많다. 대략 이 산에 왕릉 13기, 산성지 4개, 폐사지 150여개, 불상 130여구, 탑 100여기 등 모두 650여점의 문화재가 널려 있다. 이를테면 남산은 신라인의 꿈과 이상이 담긴 천상 수미산(須彌山)이었다. 신라의 역사, 신라의 미·종교의식이 예술로 승화한 곳이 바로 남산이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노천박물관이라고 부른다.

남산 서쪽 기슭의 나정(蘿井)은 신라의 첫 임금 박혁거세의 탄강전설이 있고, 포석정은 신라 천년사직이 종말을 고한 비극이 서려 있다.

▲배리석조여래입상→삼릉→냉골 석불좌상→마애관음보살상→선각육존불→선각여래좌상→삼릉계석불좌상→상선암 마애불→금오봉-용장사지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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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에 있는 월성박씨의 능으로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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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길에서 본 경주의 전경.
▲등산을 겸한 답사코스는 여럿 있으나 취재팀은 남산 서북쪽 삼릉계 계곡의 석조삼존불과 삼릉을 둘러보고 신라의 미소 신라인의 사조를 생각해보는 코스인 금오봉길을 택했다. 한여름에도 찬기운이 돌아 냉골이라고 부르며 남산골에서 가장 유적이 많다.

산 입구에 있는 배리는 ‘절하는 마을’이란 뜻이다. 경주의 대표석불로 7세기 초에 조성한 것이다. 1923년 배리 주변에 흩어진 것을 수습했다. 배리 석조삼존불 본존 입상의 가장 큰 특징은 그윽한 미소다. 그런데 최근 삼존불 특유의 미소가 사라져 버렸다. 삼존불 보호를 위해 보호각을 씌우는 바람에 태양광이 차단되면서 특유의 미소를 잃어버린 것이다. 안내인은 야간에 오면 조명이 보호각 위에서 비치기 때문에 아름다운 미소를 다시 볼 수 있다고 귀띔했다.

삼존불 본존의 또 다른 특징은 귀엽고 천진난만한 표정이다. 그렇게 보이는 이유는 머리에 비해 지나치게 작은 신장과 16세의 4등신으로 표현했기 때문. 왼쪽의 협시보살은 신라 최고위층 귀족의 화려한 복식을 입고 있다. 미륵반가사유상의 원형이라는 설이 있다.

길을 따라 삼릉방향으로 오른다. 소나무 숲속에 경주사람들의 크고 작은 무덤들이 곳곳에 산재한다. 솔숲에 배리삼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월성 박씨의 능으로 신라 8대 아달라왕, 53대 신덕왕, 54대 경명왕의 무덤 3개가 있어 삼릉이라고 한다. 거대한 소나무 숲에 조성된 능은 서쪽 앞산 망산과 조형성이 닮았다. 선조들이 조성 당시부터 이를 감안한 것이다.

걷기 좋을 정도의 경사도, 토종 소나무가 지천인 길을 따라 오른다. 워낙 많은 관광객이 찾는 경주여서인지 등산복이 아닌 편한 복장을 하고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갈림길에서 만나는 목이 없는 섬뜩한 불상. 1964년 8월 남쪽 30m지점 땅속에서 머리가 잘린 상태로 동국대학교 학생들에 의해 발견됐다. 통일신라의 문화적 성숙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늠름한 기상이 돋보이는 냉골 석조여래좌상이다.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린 매듭진 가사 끈과 아래에 동여맨 끈, 무릎 아래에 있는 두 줄의 매듭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머리와 손이 없으나 풍만한 어깨 등 정교하게 새긴 매듭이 인상적이다. 머리 없는 석조여래상에서 왼쪽 산등성이를 타고 50여m 더 오르면 세로로 긴 기둥바위에 1.5m 크기의 불상이 나온다.

엷은 미소를 짓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형상의 관세음보살입상이다. ‘미스 경주’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예쁘다. 심지어 입술에 립스틱을 바른 것처럼 붉은 기운이 돈다. 붉은 기운이 도는 입술이 우연의 일치인지, 조각가의 의도인지 애매하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골짝 왼편 넓은 바위 벽면에 이번에는 선으로만 새겨져 있는 선각육존불상이 등장한다. 경주에서 음각으로만 돼 있는 불상은 별로 없는데 이를 통해 신라불교의 회화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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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인(說法印)자세를 한 여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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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경주로 불리는 관세음보살입상.


불상 위로 등산로가 나 있다. 상부에 선각육존불을 보호하기 위해 바위를 파내 빗물이 좌우로 흘러가도록 설계했다. 등성이로 200m쯤 더 올라가면 높이가 10m가 넘는 절벽 벽면에 설법인(說法印) 자세를 한 여래상이 나온다.

몸체는 선각인데 불상의 얼굴은 돋을새김으로 도드라져 있다. 작은 언덕에서 남쪽을 바라보며 서 있는 보물 제666호 삼릉계 석불좌상. 8~9세기 통일신라시대 때 불상으로 일제를 거치면서 목과 광배가 잘려 1923년 시멘트로 보수했다. 2008년 시멘트를 떼어내고 복원했다. 그래도 얼굴에는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성스러움의 상징으로 머리, 등 뒤에 광배가 몸체에 붙어 있다. 10여개로 조각나 훼손된 파편을 붙여 원형을 살렸고, 없어진 부분은 새로운 돌로 조각해 넣었다. 그 앞에는 탑이 세워졌던 흔적이 있다.

상선암 계단길을 오르면 하늘을 배경으로 선 거대한 상선암 마애불이 등장한다. 이 산에 있는 불상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이다. 실로 불상의 규모에 압도당하고 마애불의 근엄한 표정에서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된다. 거대한 바위 벽면에 6m 높이로 양각된 여래좌상은 얼굴의 앞면과 귀 부분까지는 원만하게 새겨진 반면, 머리 뒷부분은 투박하게 바위를 쪼아 냈다. 앞서 아래서 봤던 여래상과 마찬가지로 불상의 몸 부분은 선이 거칠고, 좌대 부분은 희미하게 사라져 버린 모습이다. 이는 바위 속에서 부처님이 나오는 순간을 표현한 것으로 불교가 바위신앙의 합일을 의미한다고 한다.

금오봉 오르는 길, 경주의 전역이 보인다. 지금은 경주의 인구가 26만에 불과하지만 1300년 전 최고의 황금기를 누렸던 경주는 인구 100만이 살았던 거대도시였다. 아스라이 멀리 거대한 왕릉이 보인다.

용장사지 삼층석탑은 산 전체를 탑의 하층기단으로 삼은 탑. 산 전체를 탑의 일부로 표현한 것이다. 다가가면 높이는 4∼5m에 불과하지만 아래에서 보면 거대한 탑으로 보인다.

이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 합일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 산에 있는 불상의 압권이다. 탑이 있던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쓴 곳이다.

천재 김시습은 어릴 적 왕궁에 초청돼 세종 앞에서 한시를 썼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의 나이 21세 때부터 비운을 맞게 된다. 1455년(세조 1년), 이른바 ‘계유정난’이라고 부르는 수양대군(세조)의 단군 왕위찬탈사건이 발생하자 이를 비판했다. 이 일로 생명과도 같았던 책을 덮고 동가숙서가식 하며 속리의 허허로운 삶을 택한다.

당시 노선을 같이했던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참수의 비극을 맞게 되자 이들의 찢겨진 시신을 눈물로 수습했다.

31세부터 7년간 용장사에 은거하며 한문소설을 썼다. 단종에 대한 애끓는 슬픔, 세조의 반감을 주체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용장사지에는 이런 사실을 간직한 폐사의 흔적만 뒹굴고 있다.

이 외에도 남산에는 숨은 듯 잘 보이지 않는 선각과 불상이 많다. 산 중턱에 산으로 기어 올라가는 금 거북이 있고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거대한 바위에 미니어처처럼 새긴 불상들도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남산은 멀리서 보면 그리 높지 않고 크지도 않은 산이지만 산에 들면 신라인이 꿈과 사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매우 크고 위대한 도솔천인 것이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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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이 없는 불상 동국대학생들에의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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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서 만나는 목이 없는 냉골 석조여래좌상. 왼쪽 어깨에 흘러내린 매듭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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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666호, 삼릉계 석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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