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7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7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2.21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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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1. 이광악나무
“그 모두는 오직 장군께서 잘 훈련시켜 놓으신 덕분입니다.”

그런데 시민의 입에서는 더욱 듣기 망극한 소리까지 나왔다.

“어쩌면 내가 짐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봤소. 그러니…….”

조운은 광녀보다도 더 미쳐가는 모습을 보였다.

“짐? 짐이라니요? 어찌 그런 말씀까지……?”

“만약 그대가 끝까지 응해 주지 않는다면 나도 생각이…….”

조운은 그 경황 속에서도 이번이 그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하여 미리 마음먹고 있던 바를 간곡하게 청하기 시작했다.

“저는 위기에 빠진 나라를 건질 귀인을 구하라는 운명을 타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시민은 듣지 않겠다는 표시인 듯 두 눈을 감아버렸다. 하지만 조운은 윤달규의 말만 믿고 맹목적으로 비차의 배를 두드려대던 그때처럼,

“그 귀인이 바로 장군이라는 것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습니다.”

조운의 귀에 김제갑 목사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내 조카를 살려야 하네. 그냥 죽게 해서는 안 돼. 자네는 그렇게 해야 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니겠지?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이번 한 번만이라도 제발 제 청원을 수락해 주십시오. 부디 비차를 타고 성을 빠져 나가시어 훗날을 기약하셨으면 합니다. 응당 태형을 맞아 마땅할 건방진 말씀이오나, 장군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역량과 기개를 지니신 분이라고 믿사옵고…….”

“나더러 우리 군사들과 민간인들을 남겨두고 혼자만 성을 떠나라는 것이오?”

이번에 조운의 귀에 들리는 것은 보묵 스님의 염불소리였다. 조운 자신과 둘님이 하루아침에 부모를 잃은 망극한 슬픔과 고통에서 이만큼이라도 벗어날 수 있도록 한 것은 오로지 보묵 스님이 신봉하는 불덕(佛德)이었다.

“크게 다친 제 내자와 백정 하나를 아주 잘 치료해 준 의원 한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그에게 장군의 상처를 맡기시면…….”

“내 몸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소. 그리고 주장(主將)인 내가 없어진 것을 알면, 여기 진주성은 단 하루도 더 버텨내지 못할 것인즉…….”

“일찍이 보묵 스님이라는 고승께서 제 부모에게 예언하시기를, 새의 운을 타고 태어난 당신들 자식이 반드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건질 귀인을 구할 것이라고 하셨고, 그것은 정평구라는 사람과 제가 저 비차를 만든 것으로도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장군께서 쾌차하시어 왜적 손에 넘어갈 조선을 지키시게 될 것임은 불문가지가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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