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7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7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2.22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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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2. 사라진 이상한 새
시민이 눈을 떠서 조운을 보며 조용한 목소리로,

“그대의 깊고도 갸륵한 충정은 진정 고맙고 아름답소.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그대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은 참으로 큰 복이요. 그 어떤 것으로도 맛볼 수 없는 기쁨이라는 생각을 벌써부터 해오고 있었소.”

그의 음성에는 기적과도 같이 어떤 고통과 회한의 기운도 담겨 있지 않은 듯하여 또 다른 면에서 조운을 놀라고 당황케 했다.

“더 중요한 이야기 하나, 그대는 방금 본관에게 말한 그 일을 이미 하였소이다. 하늘이 정해 주신 운명대로 이루었다, 그 말이외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시온지……?”

조운이 크게 놀라 묻자, 시민은 얼굴에 보일락 말락 엷은 미소를 띠었다. 조운은 그 얼굴에서 보묵 스님, 아니 부처를 보는 듯했다.

“내가 그대와 정평구라는 사람과 함께 비차를 탔던 그날…….”

꿈꾸는 듯한, 그러나 현실감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나와 이승과의 인연은 끝나게 돼 있었소.”

시민은 군복이 아닌 자신의 환자복을 가만히 매만지며,

“내 장수복을 뚫었던 그 총알들…….”

시민은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지만 근엄함을 잃지 않았다.

“만약 나 혼자 비겁하게 구차한 목숨을 연명할 생각이 있었다면, 그날 그대들이 내게 간청했던 바대로, 그때 성을 나가서 다시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오. 하지만 나는 돌아왔소. 내 무덤이 될 수도 있는 이곳으로 말이오.”

시민은 숨을 몰아쉬고 나서 다시 입을 달싹거렸다. 힘이 들어도 할 말은 다 해야겠다는 신념이 고스란히 조운에게로 전해졌다.

“왜 그렇게 했는가? 난, 그게 나의 운명을 따르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오. 나라를 위해 한몸을 던지는 무인의 길 말이오.”

“그, 그렇지만…….”

“이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지 마시오. 또한 죽어서도 비차를 잊지 못할 것이오.”

“비차는 장군을 살릴…….”

“어허? 운명, 운명이라고 했거늘…….”

“장군의 운명은 이런 게 아니오라…….”

“만일 그날 내가 비차를 타지 않았다면, 나는 그때 벌써 총에 맞아 죽었을 것이오. 그랬다면, 그 이후에 벌어진 여러 전투에 나는 참가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어찌 승전가를 부르고 승전고를 칠 수가 있었겠소? 따라서 김시민이라는 이름 석 자는 그대로 사라져버렸을 터, 다행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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