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7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7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12.25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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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장 2. 사라진 이상한 새
가을의 끄트머리였다. 이제 곧 자연과 인간의 마음을 숲속의 은둔자처럼 웅크리게 하는 계절이 올 것이다. 뒤돌아보면, 붉은 단풍 빛깔만큼이나 숱하게 뿌려진 붉은 피였다.

막바지에 이른 전투 지역을 순시하던 중, 죽은 체하고 시체더미 속에 숨어 있던 왜병의 저격에 의해, 왼쪽 이마에 총탄을 맞고 쓰러져 치료받고 있는 시민의 곁에는, 늘 동생 시약(時若)이 그림자같이 붙어 있었다. 우애가 남다른 형제였기에 시약은 시민이 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타깝고 애처로웠다.


“형님, 제발 몸을 생각하십시오.”

“아니다. 지금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나라일은 쾌차하신 다음에 걱정하시고요.”

“나의 일신이 더 중요하단 말이더냐?”

시약의 간곡한 호소도, 주제 넘는다 싶은 타이름도, 오로지 남쪽을 보고 앉아 있는 그 고을 주봉(主峯)인 비봉산처럼 시민의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리지는 못했다. 그는 때때로 머리를 들고 북쪽을 향해 진한 눈물을 흘렸다. 시약은 그 눈물 속에서 보았다. 임금과 부모형제 그리고 고향 땅을.

‘형님께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성웅이라 한들, 아우인 나로서는 그저 애달프기만 한 이 애끊는 심정을 뉘 알랴.’

시약은 그만 그방에서 나오고 말았다. 마당 가장자리에 우두커니 선 나목(裸木) 아래 홀로 서서 하염없이 올려다보는 하늘이 겨울날 꽁꽁 얼어붙은 고향 마을 앞 백전천처럼 차갑게 느껴졌다. 그 어린 나이에, 그 냇물의 소(沼) 가운데 있는 커다란 뱀굴 속에 살면서 사람과 짐승을 해치는 사납고 못된 이무기도 거뜬히 처치한 시민이었다.

‘아무리 생사의 길은 인간이 선택할 수 없다곤 하지만…….’

그의 눈에도 시민이 회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시간이 지날수록 총알의 독이 퍼져나가는 바람에 시민의 고통은 더해만 가는 듯했다. 그렇게 큰 체구의 그가 다른 부위도 아니고 하필이면 이마에 총알이 박히다니.

마음 같아서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하여 아직도 왜적의 더러운 체취가 묻어 있을 것 같은 그것을 입으로 빨아서라도 뽑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자칫 잘못 건드려 덧이 나거나 독이 더 빨리 번지면 수명을 단축시킬 수도 있다는 게 군의관의 말이었다.

그런데 이튿날 시약이 다시 시민을 찾았을 때였다. 시민이 왠지 불길한 이런 말을 꺼내 시약은 예감이 너무 좋지 않았다.

“아우! 내가 죽을 때 죽더라도 더러운 왜놈들 탄알을 내 몸속에 넣은 채 눈을 감을 수는 없어.”

시약은 북받치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형님 마음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군의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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