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임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선조 임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 경남일보
  • 승인 2015.01.2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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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근 (울산대 행정학과 객원교수·행정학 박사)
하상근
지난해 7월 개봉한 17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찾은 영화 ‘명량’에서, 그리고 KBS 대하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에서 구국의 영웅인 이순신을, 선조는 질투하고 시기하여 끝내는 대역죄인으로 몰아간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과연 선조는 어떤 왕이었을까.

선조는 불투명한 왕위계승 과정으로 정통성의 시비가 있었는데, 이러한 시비를 씻는 유일한 방법은 정치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것이었다. 하지만 선조는 재임시절 대부분을 당쟁으로 허우적대다 정치가로서 실패한 왕이었다. 즉 선조는 성리학을 국시로 삼아 지식인들의 지지를 받았으나 사림의 당쟁으로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게 됐고, 종국에는 정여립 사건을 계기로 무수한 비극이 발생했다.

무능한 정권인 선조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현실은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 했다. 그렇게 머릿속의 바람을 현실인 것처럼 호도하는 동안 나라는 깊숙이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11개월 만에 한양도성은 무혈점령 당한다. 이러한 때에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민심을 얻는 것이다. 민심 획득의 요체는 차별적이고 불평등한 제도와 관습의 개혁이다. 선조는 신분제도와 조세제도의 모순 때문에 백성들의 버림을 받았다. 이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하면 조선은 멸망할 것이었다.

이때 당시 영의정이었던 류성룡이 제정한 각종 개혁입법으로 백성들의 마음은 돌아오면서 조선은 망국의 위기에서 회생하는 듯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면서 선조의 마음은 달라졌다. 전시의 개혁입법들이 무력화됐던 것이다. 임진왜란은 우리에게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자세가 되어 있느냐고 묻고 있다. 선조는 전란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했고, 성리학을 대체할 새로운 사상이 없었으며, 새 나라를 개창할 주도세력도 없었다.

선조의 백성들에 대한 신뢰(민심)를 얻는 방법은 간단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선조는 왕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은커녕 한양도성과 평양과 의주를 버리고, 심지어 요동으로 도망가려고 하면서 구국의 충신인 이순신 장군을 대역죄인으로 몰았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건데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펴보자.

 
하상근 (울산대 행정학과 객원교수·행정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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