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님아, 그강을 건너지마오
[경일칼럼]님아, 그강을 건너지마오
  • 경남일보
  • 승인 2015.01.2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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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입춘이 다가오는데 다시 동면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할 것처럼 깊은 겨울이다. 삶이 저렇게 마른 바람소리를 내거나 비오기 전 날처럼 꾸무럭하거나 뼈만 곧추세운 것처럼 예민하거나 통증으로 오는 그런 날들이 있다. 몸과 마음의 경계에 서서 푸른 힘줄 선명한 동백의 숲으로 들고만 싶다

강원도 산골 오두막집에서 76년이라는 세월을 해로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온 노부부의 일상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낸 독립영화가 가져다 준 감동은 뜨거웠다. 감독 혼자서 그림자처럼 일상을 스케치하듯 촬영한 영화 한편은 오래된 보자기 속 묵혀둔 한권의 화집처럼 선물로 다가왔다.

한번 건넜다 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그 강을 두고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애절하고 애통하다. 하지만 생로병사의 순리에 따라 할아버지는 마침내 할머니를 남겨둔 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강을 건너고 만다. 어떻게 사랑하고 어떻게 이별하는가를 감동적으로 보여준 순애보적 영화였다.

사랑이 무엇인가 형이상학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은 이렇게 하는 것이다에 잔잔한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사랑이라는 건 거창한 행동이 결코 아니다는 것이다.

“길아래 두 돌부처 굶고 벗고 마주서서/바람비 눈서리를 일년내내 맞을망정/평생에 이별이 없으니 그를 좋아하노라.” 하지만 세상에 이별이 없다면 사랑이 이토록 숭고하고 애통할 수 있겠는지 역설적인 생각도 해본다.

공민왕은 노국대장공주가 죽자 불사에만 빠져 살다 결국 고려의 멸망을 자초하고 마는데, 역사상 가장 절실한 로맨스를 보여 주었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이제 그녀의 곁으로 갈 수 있겠다고 유언한 마릴린 먼로의 남편 디마지오의 유언이나 왕비 뭄타즈가 죽자 지상 최대의 무덤 타지마할 궁전을 만든 사쟈한은 사랑하는 여인을 목숨처럼 아꼈던 사람들이다.

아마 이런 사랑을 두고 결혼이란 폭풍의 하늘에 걸린 무지개 같은 것이라고 했나 보다. 그러고 보면 인간은 사랑의 추억에 사는 것임에 틀림없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안하기 때문에 모든 것은 관계에서 시작된다. 외로움을 두려워하는 것도 결국은 불안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한다.

하지만 10년 전에 비해 황혼이혼이 10배가량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과연 부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낡은 가족주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주의로 가고 있고 결국은 가정의 해체를 불러오고 있다. 있을 때 잘해라는 것이 괜한 말은 아니다.

이혼은 자랑도 아니고 부끄러운것도 아니지만,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역시 선택의 기준은 행복이다.

서로의 등을 토닥거려 주고 마침내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그날까지 내곁에 남아 차마 그 강을 건너갈까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보석처럼 귀하고 소중하다.

꽃잎이 흩뿌리지 않고 꽃송이째 툭 떨어진다. 동백꽃이 진 자리, 낙화의 절정을 본다. 왠지 조금씩 애달프고 호젓하다.
황숙자 (시인)
 
new황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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