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꼬리의 슬픔
꾀꼬리의 슬픔
  • 경남일보
  • 승인 2015.02.0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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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현 (시인,삼현여중 교사)
박종현
유아무와 인생지한(有我無蛙 人生之恨-나는 있으나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 고려 중·후기 학자였던 이규보 선생께서 몇 번이나 과거에 낙방하고 초야에 묻혀 살 때 집 대문에 붙여둔 글이다. 이에 얽힌 내력은 다음과 같다. 임금이 하루는 단독으로 야행을 나갔다가 산중에서 날이 저물었는데 요행히 외딴집을 발견하고 하루를 묵고자 청을 했지만 집주인(이규보 선생)이 조금 더 가면 주막이 있다고 해 발길을 돌렸는데, 그 집 대문에 ‘有我無蛙 人生之恨’이란 글이 붙어 있어 그 의미가 궁금했던 차, 주막집 주모에게 외딴집에 대해 물어보니 과거에 낙방한 뒤 집안에서 책만 읽으며 살아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임금은 다시 그 집으로 가서 사정한 끝에 하룻밤을 묵으면서 ‘有我無蛙 人生之恨’이란 글을 붙여 놓은 내력을 들을 수 있었다.

옛날, 노래를 잘하는 꾀꼬리와 목소리마저 듣기 고약한 까마귀가 살고 있었다. 하루는 까마귀가 꾀꼬리한테 3일 뒤 노래시합을 하자고 했다. 자신의 실력을 믿었기에 시합에 응한 꾀꼬리는 3일 동안 목소리를 더 아름답게 가꾸고 노래연습도 부지런히 했다. 그런데 까마귀는 노래연습 대신 자루 하나를 가지고 논두렁에 개구리를 잡으러 돌아다녔다. 그렇게 잡은 개구리를 심판을 볼 두루미한테 갖다 주고 뒤를 부탁했다.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뇌물은 받은 두루미는 까마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말은, 이규보 선생이 불의와 불법으로 얼룩진 나라의 세태를 비유해서 한 말일 것이다. 아무리 실력이 있고 열심히 일을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뇌물을 바치는 사람이나 비열한 수단을 쓰는 사람에게는 당해내기 어려운 것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이규보 선생의 말을 들은 임금은 결국 임시과거를 열었고, 이규보는 장원급제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당한 간언(諫言)을 하는 사람마저 싹을 없애려 하는 세상이다.

우리나라는 2013년 국제투명성기구가 조사한 부패인식지수에서 OECD 34개국 중 27위를 했다고 한다. 창피하다. 이제 우리를 돌아볼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뇌물이든 비열한 방법이든 그 자리를 차지하기만 하면 사람들이 그에게 굽실거리고 추앙하는 세태가 아름다운 목소리를 지니고 열심히 노력하는 꾀꼬리들을 더욱 슬프게 한다. /
박종현 (시인· 삼현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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