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시론]충신보다는 양신(良臣)이 더 필요하다
[경일시론]충신보다는 양신(良臣)이 더 필요하다
  • 경남일보
  • 승인 2015.02.26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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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근 (객원논설위원·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당 태종이 위징에게 물었다. “양신(良臣)과 충신(忠臣)의 차이점은 무엇이오?” 위징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양신은 자신도 세인의 칭찬을 받고, 군주도 명군이라는 숭고한 칭호를 누리게 합니다. 충신은 자신도 죽임을 당할 수 있고, 군왕은 큰 악명만 뒤집어쓰게 됩니다. 집안과 나라 모두 큰 훼손을 입지만 오직 홀로 충신의 명예를 누리게 됩니다.”

위징은 양신의 전형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오죽하면 당 태종이 황후에게 ‘저 시골 늙은이를 내일 죽여 버리고 말겠다’고 말했을까. 그러나 당 태종은 위징의 직언이 주군의 위신과 덕망을 널리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고 있었기에 거침없는 직언도 받아들였다. ‘정관정요’에는 훌륭한 양신이 되기 위한 중요한 덕목이 대거 수록돼 있다. 공평을 견지하며 올바른 인재를 천거하고, 간언(諫言)을 해 끊임없이 군주의 자기계발을 돕고,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을 유지하면서 초지일관하는 자세 등이 대표적이다.

럼즈펠드의 규칙(Rumsfeld’s Rules)이라는 것이 있다. 럼즈펠드는 포드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내고 국방부장관, 하원의원, 제너럴 인스트루먼트 회장 등 정·관·재계를 두루 거쳤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일종의 공직 지침서인 럼즈펠드 규칙을 만들었다. 백악관 비서실장들을 위한 첫 번째 규칙은 ‘대통령에게 욕을 퍼붓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없거나 그럴 용기가 없다면 직위를 수용하거나 그 자리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세상을 우리와 그들로 나누지 말고, 언론, 의회, 정적에게 빠져들거나 원한을 품지 말라’, ‘당신이 동의하지 않거나 대통령이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는 의심이 들 경우에는 대통령의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지 말라’라는 규칙들이 담겨져 있다.

최근 진퇴여부를 놓고 언론이나 국민들로부터 주목을 받아왔던 대통령 비서실장이 조만간 교체될 모양이다. 본인도 이미 사의를 표명했고 대통령도 후임 인선에 고심하는 듯하다. ‘보기 드물게 사심 없는 분’이라는 박 대통령의 극찬에도 불명예 퇴진을 하게 됐다. 여론이 득달같이 비서실장을 바꾸라고 한 것은 큰 죄가 있어서가 아니다. 사심 없이 보좌해온 점도 충분히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국민 입장에서 보면 위징이 말하는 양신의 덕목, 럼즈펠드의 규칙에 나와 있는 비서실장의 첫 번째 역할에 대한 아쉬움이 크게 느껴질 것이다.

새로운 비서실장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직언이다. 윗분의 뜻만 받드는 예스맨은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다. 예스맨은 충신은 될 수 있어도 양신은 아니다. 욕을 퍼붓는다는 생각으로 대통령에게 직언할 용기가 없다면 비서실장으로 나서서는 안 된다. 또 하나는 소통이다. 대통령에게 외부 여론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대통령의 국정 어젠다가 수행될 수 있도록 국회와 협상해 나갈 수 있는 소통의 리더십을 지녀야 한다.

박 대통령의 임기가 벌써 2년이 지났다. 민심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정치는 답답하고 서민경제는 어렵다’는 것이다. 견고한 지지계층의 이탈로 국정수행 지지율도 30%대 초반으로 주저앉았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폐쇄적이고 딱딱한 이미지의 국정운영 방식도 지지율 하락에 한몫 거들었다. 아무쪼록 집권 3년차에는 대통령 주변에 많은 양신들이 모여 국민과 소통정치, 활력 넘치는 경제를 만들어 주길 기대해 본다.

 
안상근 (객원논설위원·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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