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즐거운 나의 집
[경일칼럼]즐거운 나의 집
  • 경남일보
  • 승인 2015.02.26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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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엄동설한 설을 며칠 앞두고 이사를 했다. 요즘은 거의 포장이사를 하기 때문에 신경 쓸 게 없어 보이지만 꺼내 놓은 내 살림이란 것은 구닥다리 신세였다. 널브러진 것을 참지 못하고 정리정돈이라면 한 깔끔하는데 물건에는 저마다의 추억이 있어서 ‘이건 이래서 버릴 수 없어’ 하고 껴안고 사는 짐들이 어마무시했다. 이사할 때마다 집을 넓혀오는 것에 몰두하고 아이들이 커가는 것과 작업실이 필요하다는 등으로 이유를 달았다.

돈이 모이면 대부분 집부터 산다. 모은 돈 전부를 투자해 집 한 채가 재산의 전부인 사람들도 많다. 어느 순간부터 삶의 터전인 집이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의 펜트하우스에 사는 최상류층 부부는 부부싸움 끝에 남편이 아내를 살해했다고 한다. 물질적 가치에만 의미를 두고 사는 집의 온도는 대리석처럼 차갑고 살벌하다. 인테리어가 잘되어 있는 비싸고 멋진 집이 아니라 가족들의 소양과 정신이 담긴 정서적 가치가 있는 집이 되길 바란다.

온기가 있고 살고 싶은 집이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서서 집을 향해 따뜻한 시선을 보내야 한다. 아웅다웅과 시시콜콜과 적나라함과 화기애애가 함께하는 가족들은 살아있는 그림 속 풍경이 되고, 그 풍경은 그대로 집이라는 틀의 액자가 되고, 그래서 추억이 되고 마침내 스토리는 완성된다. 나는 스승님이 주신 우림산방이라는 당호를 가지고 있다. 이름도 요란하고 헛갈리는 콩글리쉬 아파트 803호에서도 우림산방의 현판은 인문학적인 의미에서 당당하고 참한 멋이 있다. 그래서 가훈도 필요하고 당호도 있으면 좋다는 쪽이다.

ㅈ후배는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서는 순간의 쾌감이 삶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버린다고 한다. 열 받은 날이면 오늘은 뭐 버릴 게 없나 하고 옷장도 뒤적이고 발코니 창고도 열어 본단다. 살다보면 몇 년이 가도 쓰지 않는 것들이지만 아까워서 쟁여두고 있는 것들이 구석구석 점령하고 있다. 그래놓고 집은 항상 비좁다. 미련 없이 버리는 게 집 크기를 넓혀가는 것보다 경제적 효용성이 더 크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필요 없는 것은 버려야 하고, 필요한 것은 제대로 갖춰져 있어야 한다. 때때로 삶의 무게중심을 어디다 두고 살아야 하나 고민될 때도 있지만 이젠 더욱 심플하게 살고 싶다. 버리고 비우기. 물건정리는 곧 마음정리로 연결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정리정돈된 생활은 한층 내 삶의 여유와 쾌적함과 자유스러움으로 충만할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집.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지켜주는 든든한 보호막으로써 가족들의 삶의 흔적들을 오래오래 기억하는 집으로 집에 대한 의미를 환기해 본다. 새로 이사한 전망 좋은 집은 나를 담을 것인지 혹은 내가 집을 담는 그릇이 될 것인가 집에 대한 예의를 가진다. 새봄이 오니 생기를 불어넣어 줄 노오란 수선화 화분이라도 하나 들여야겠다.

황숙자 (시인)
 

황숙자2104.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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