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꽃이 피다 지다
[경일칼럼] 꽃이 피다 지다
  • 경남일보
  • 승인 2015.03.31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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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수굿이 서 있는 벚나무들 사이로 겨울 끝자락을 붙들고 오는 꽃샘추위가 야속하다. 코발트빛 바다를 배경으로 동백꽃이 붉다. 발길 닿는 대로 걸으며 만나는 아슴아슴 봄빛 어린 반가운 풍경들, 내밀하게 따스한 봄바람이 분다.

소소한 일상 속에서 이젠 너무 멋부리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야겠다. 대충 아무렇게나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슬슬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단순한 것들이 내 사고의 프레임을 바꾸는 순간이 있다. 느린 삶의 지혜를 진작 알았으면 좋았을 것이 아니라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OECD 세계의 국가별 행복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최하위이다. 내전국으로 유명한 중동이나 가봉, 아르메니아 등 아프리카와 비슷하다. 우리는 먹고살기 어려운 시대는 지났으나 먹고살기 참으로 바쁜 시대에 살고 있다. 예전보다 조금 더 부자가 되었지만 조금 더 행복해졌는지는 일상을 챙겨 보아야겠다.

오케스트라의 위대한 지휘자는 틀린 쪽으로 먼저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는 것. 주변을 보면 잘되는 집안은 덕담과 감사를 하고 안되는 집안은 그렇게 탓을 한다. 돈이나 명예를 많이 가졌다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화목한 집안이 잘되는 집안이다. 개인적으든 가정적으로든 스스로 행복지수를 높이는 습관과 방법을 고민하고 개발해 보아야 한다.

사치가 궁상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궁상은 사치보다 못하다는 것이다. 한끼 밥을 굶더라도 때로는 꽃 한다발을 사는 즐거움을 택한다. 그런 여유와 감성은 필요하고 자신의 삶을 가꿀 줄 아는 마인드가 소중하다. 모든 아름다운 것은 인간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떤 것이 중요하다고 해서 다른 어떤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항상 좋을 수 없고 항상 웃을 수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한 나의 책임이다.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아주 잠깐이더군/꽃이/지는 건 쉬워도/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를 봄볕 아래서 읽는다.

별모양으로 잔뜩 오므리고 있던 벚꽃들이 화르르 팝콘처럼 터지고 지상의 모든 꽃길을 따라서 스치듯 지나치듯 천천히 거닐어 보고 싶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봄날의 꽃들이 무시로 피었다가 지고 우리들의 황홀한 봄날도 그렇게 왔다가 또 그렇게 가고 있다.

봄이 오고 꽃이 피어나기를 기다리는 날들은 애틋하고 간절하지만 어찌하여 꽃이 지는 건 잠시 꿈을 꾸는 것처럼 나른하고 허무하다. 꽃은 지기 때문에 아름답고 봄날은 가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법. 영원한 게 어디 있는가.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더니, 긴 겨울의 끝을 털어내고 우리는 어떤 꽃을 피우고 갈 것인지 끝내 삶은 안온하고 넉넉할 것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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