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 경남일보
  • 승인 2015.04.01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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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식 (수필가)
이홍식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 존재 의미를 갖게 하고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힘의 원천이 된다. 나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더라도 나를 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사람을 살아있게 만든다. 더구나 사랑과 관심이 더해진다면 내 자긍심을 키우고 삶의 의미를 더 강렬하게 만든다.

만약 상대가 이성이라면 의미가 또 다를 것이고, 사랑하는 연인 사이라면 그 정도가 훨씬 강렬할 것이다. 언젠가 심리학에 관한 책을 보며 사람 심리에 대해 이야기한 글을 읽었다. 남자들만이 모여 운동을 하는 경기장에 미모의 젊은 여자관중이 한명 들어와 경기를 지켜보면 그만 경기의 질이 확 달라진다는 실험결과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다.

글을 읽으며 얼마 전 일이 생각났다. 모임이 있던 날 식사를 겸해 술을 한잔하다 흥이 이어져 근처 노래방을 갔는데 일행 중에는 여성분도 있었다. 노래가 시작되자 모두 흥이 나서 박수치고 돌아가며 노래 부르고 마냥 즐거웠다. 그러다 시간이 늦어 여성분들이 집으로 가고 마지막 남은 여성이 나가버리자 신기하게도 무대의 막을 내리고 조명이 꺼져버린 듯 금방 김빠진 맥주처럼 분위기가 가라앉고 시들해지는 것이다.

군에 있을 때 하루 50㎞ 행군을 하는 훈련이 있었다. 하루 종일 걷다보면 몸은 지치고 발에는 물집이 생겨 고통이 심하다. 절뚝거리며 걷다보면 발바닥 물집이 벗겨져 쓰리고 아파 한걸음 걷기도 어렵다. 힘들어 죽을 것 같다가도 마을을 지날 때면 마을사람 서너 명과 동내 정자에 앉은 할아버지·할머니 한두 분이 손 흔들며 박수를 칠 때가 있다.

그러면 자세를 바로잡고 힘차게 걷는다. 왜 그럴까, 누군가 나를 바라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훈련을 마치고 부대가 가까워지고 우리를 환영하는 힘찬 군악대 소리가 들리면, 그때부터는 없던 힘이 쏟아나고 마치 의장대 행진을 하듯 힘찬 걸음으로 정문을 통과하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지친 몸이 힘들지 않고 물집이 터진 발바닥도 아프지 않다.

내가 아름다운 건 아름답게 보아주는 상대가 있기 때문 아닐까. 만약 바라봐주는 상대가 없다면 사막 모랫길을 혼자 걷는 것처럼 외롭고 지루하다. 반대로 보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걷는 의미가 전혀 다를 것이다. 아직까지 내 힘을 필요로 하는 가족과 이웃이 있고, 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면 군악대 환영을 받으며 부대로 들어가는 병사처럼 당당하고 씩씩한 모습으로 남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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