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나이는 먹었으되 자신을 할머니로 불리기를 마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참으로 수상한 일이다. 여성으로서의 대접에서 밀려나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문화 인류학자 크리스틴 혹스라는 사람의 ‘할머니 가설’을 알고 나면 마음이 좀 달라지려나.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 여성은 폐경 이후 30, 40년을 더 사는데 여기에 인류학적 중요한 이유가 존재한단다. 즉 할머니가 되도록 진화하는 것인데 자기 자식과 출산 경쟁을 하지 않고 손자들을 양육할 기술의 전수자로 등극하여 유전인자를 이어가는 것이란다. 이들은 자연히 부엌일, 편지글, 사진의 가족사, 제사, 설 등의 풍습을 전해주고 음악, 문학의 구전 등 문화를 이어주는 역할을 맡는 사람이다.
아하, 그러니 할머니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 내 또래들도 아기를 보면 다들 본능적으로 탄성을 지르며 환호하던 거였구나. 사춘기가 되면 저절로 이성이 그리워지듯 이제 할머니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나는 시기인 것이었구나. 아무리 감추려 해도 참을 수 없이 나오는 얘기는 결국 손자 얘기다. 조금 더 두고 볼 양이면 요모조모 저장해둔 사진 공개다. 오죽하면 모임에서 남의 아기 이야기는 별로라 돈 내고 하라고까지 했을까.
그러나 그리 귀여운 손자를 맞이하고 잘 기르기 위해 무슨 일들을 하시냐고 하면, 그건 또 이야기가 매우 달라진다. 좀 사는 집에서는 전용 도우미를 두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양쪽 할머니들이 적당히 의논하여 키우지만, 과연 이 아가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기술 전수자의 역할을 기꺼이 맡는지 의문이다.
이때야말로 할머니가 잘 해주어야 가풍이란 것도 정립되고 지역의 문화도 형성되며 나아가 지구촌 시대에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도 지켜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가풍이란 것이 이전 세대처럼 아버지 쪽을 많이 따라야 한다거나 사돈댁 것보다 낫다거나 하는 강제성을 띠어서는 곤란하겠지만, 취사선택을 잘 하여 양쪽 집안의 좋은 점을 가꾸어 나가야 하겠다. 역사에 남는 거대한 제국도 막판에 가서 해야 할 것을 조금씩 등한시하고 무시하면 와르르 무너져 내리더라는 ….
이 시대 할머니들이여, 당신들은 여자 인간을 뛰어넘는 문화의 거룩한 전수자임에 틀림이 없으십니다.
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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