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가설
할머니 가설
  • 경남일보
  • 승인 2015.04.05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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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문정임

나이는 먹었으되 자신을 할머니로 불리기를 마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참으로 수상한 일이다. 여성으로서의 대접에서 밀려나는 것이 두려워서일까.

문화 인류학자 크리스틴 혹스라는 사람의 ‘할머니 가설’을 알고 나면 마음이 좀 달라지려나.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 여성은 폐경 이후 30, 40년을 더 사는데 여기에 인류학적 중요한 이유가 존재한단다. 즉 할머니가 되도록 진화하는 것인데 자기 자식과 출산 경쟁을 하지 않고 손자들을 양육할 기술의 전수자로 등극하여 유전인자를 이어가는 것이란다. 이들은 자연히 부엌일, 편지글, 사진의 가족사, 제사, 설 등의 풍습을 전해주고 음악, 문학의 구전 등 문화를 이어주는 역할을 맡는 사람이다.

아하, 그러니 할머니로 불리기를 원치 않는 내 또래들도 아기를 보면 다들 본능적으로 탄성을 지르며 환호하던 거였구나. 사춘기가 되면 저절로 이성이 그리워지듯 이제 할머니가 되고 싶어 안달이 나는 시기인 것이었구나. 아무리 감추려 해도 참을 수 없이 나오는 얘기는 결국 손자 얘기다. 조금 더 두고 볼 양이면 요모조모 저장해둔 사진 공개다. 오죽하면 모임에서 남의 아기 이야기는 별로라 돈 내고 하라고까지 했을까.

그러나 그리 귀여운 손자를 맞이하고 잘 기르기 위해 무슨 일들을 하시냐고 하면, 그건 또 이야기가 매우 달라진다. 좀 사는 집에서는 전용 도우미를 두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양쪽 할머니들이 적당히 의논하여 키우지만, 과연 이 아가들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한 기술 전수자의 역할을 기꺼이 맡는지 의문이다.

이때야말로 할머니가 잘 해주어야 가풍이란 것도 정립되고 지역의 문화도 형성되며 나아가 지구촌 시대에 우리나라의 고유한 문화도 지켜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 가풍이란 것이 이전 세대처럼 아버지 쪽을 많이 따라야 한다거나 사돈댁 것보다 낫다거나 하는 강제성을 띠어서는 곤란하겠지만, 취사선택을 잘 하여 양쪽 집안의 좋은 점을 가꾸어 나가야 하겠다. 역사에 남는 거대한 제국도 막판에 가서 해야 할 것을 조금씩 등한시하고 무시하면 와르르 무너져 내리더라는 ….

이 시대 할머니들이여, 당신들은 여자 인간을 뛰어넘는 문화의 거룩한 전수자임에 틀림이 없으십니다.

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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