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건이 삼치 구이
왕건이 삼치 구이
  • 경남일보
  • 승인 2015.04.07 09: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창섭 (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
이창섭

저녁 반찬으로 나온 삼치구이를 보니 대학시절 학교 앞 선술집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억센 경남 사투리를 쓰는 주인아주머니의 구이집에서 가끔 대학친구들과 매콤한 삼치구이에 소주 한 잔씩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는 다른 손님들보다 더 큰 삼치가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날은 주인아주머니는 없고 저랑 나이가 같은 그 집 예쁜 따님이 삼치구이를 내주었지요.

“내 생각에 아마도 그 따님이 나를 좋아하는 거 같다.” 고등학교 1년 후배한테 자랑스럽게 말했습니다. 그 후배는 못 믿겠다는 듯 당장 가보자고 삼치구이집으로 이끌더군요. 마침 그날도 따님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늘 그랬듯이 삼치구이 하나에 소주 한 병을 주문했습니다. 삼치구이가 나오자마자 후배 녀석은 옆 테이블과 그 크기를 비교하더니 “와! 진짜 우리 삼치구이가 훨씬 더 크네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월이 15년쯤 흘러 제 나이 마흔살쯤 됐을 때 기자와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학교 다닐 때 추억의 선술집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기자와 그 삼치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삼치구이집은 그대로 있을까, 그리고 그 따님도 아직 있을까, 있어도 나를 알아보기나 할까….’ 별 생각이 다 나더군요.

반갑게도 삼치집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때보다 연세는 좀 더 드셨지만 그 주인아주머니가 앉아 계시고 주위에 남녀 대학생들이 소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삼치 큰 거 하나에 소주 한 병이요!” 잠시 후 삼치 크기는 예전만 못하더군요. 늘 남들보다 더 큰 삼치구이를 주었던 그 예쁜 따님의 안부가 궁금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저 혹시 압니까? 대학교 댕길 때 여기 짜다라 왔는데요? 그라고 저 올 때마다 삼치구이 엄청 큰 거 주던 저랑 동갑내기 따님은 지금은 어디 있능교?”

이 말을 들은 그 아주머니 크게 웃으시며 이렇게 대답하시더군요. “보소! 우리 딸은요 지금 좋은데 시집가서 아들 낳고 아무 걱정없이 잘~삽니데이. 근데 아저씨처럼 여기 가끔 와서는 자기한테만 삼치구이 큰 거 줬다고 얘기하는 아저씨들이 왜 이래 많노?” 하시데요. 그날 저는 소주를 흠뻑 마시고 옆에 있던 얼굴 모르는 대학 후배들 소줏값도 대신 내주고, 술집을 나와 환히 웃었습니다.

이창섭 (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