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5.05.26 09: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러시아 산업혁명의 개척자 사바 마몬토프
사바 마몬토프(Savva Ivanovich Mamontov)는 1841년 3월 서부 시베리아 지역 얄루토로프스크(Yalutorovsk)의 부유한 가정에서 9남매 중 한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러시아 최대 규모의 무역상사와 산업체를 이끌었던 사업가 이반 표도로비치 마몬토프로 사바가 여덟 살 때에 모스크바로 이사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막대한 유산을 남겼지만 어린 사바에게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다. 사바는 타고난 예술 애호가여서 음악과 미술, 연극과 문학이 그의 관심사였고 돈을 버는 일에는 별 흥미를 갖질 못했다. 젊은 사바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지를 여행하면서 유럽의 문화를 흡수하였다. 그는 피아노를 치고, 노래와 연극 수업을 받았고 조각까지 배우기도 했다. 아버지의 유산은 그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 재능으로 미학가, 예술애호가로서의 삶을 누리는 데 유용한 밑천과도 같은 것이었다.

예술가적인 취향과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는 자바를 후계자로 삼았다. 사바는 개인교사들로부터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고 그가 14세 때인 1855년에 토목공학 전문대학에서 청강을 하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광산 학교로 보냈고 후에는 모스크바 대학교 법학부에 입학시켰다. 사바가 사업가로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은 25세 때 비단 장사를 하면서부터였다. 그는 성공적으로 사업세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아들 사바를 그가 운영하던 철도회사의 이사로 앉히고 러시아 산업화의 미래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사바 마몬토프는 그의 직책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좋은 고문역이 필요함을 깨닫고 마몬토프 철도회사의 회장이며 그의 부친과 절친했던 친구인 표도로 치쇼프를 선택하였다.

치쇼프와 함께 철도망을 건설하면서 러시아의 지하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비전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20년 간 사바는 철도가 러시아 제국의 모든 방향으로 뻗어나가게 만들었다. 섬유 산업의 중심지인 북부지역과 무역의 중심지인 모스크바가 연결되었고, 남쪽의 볼가 강과 돈 강 사이의 광산지대가 개발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였다. 마침내 그는 태평양 해안 지대의 벽지에까지 철도를 개설하였고, 이름 없는 고장들까지 문명화시키는 데 앞장섰다. 치쇼프의 자문을 받아들이는 마몬토프의 통찰력과 함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이 그의 야심찬 계획을 실현하도록 도와주었다. 1855년 차르 알렉산드르 2세가 등극하면서 경제적 사회적 물꼬가 완전히 트이게 된 것이다. 알렉산드르 2세는 은행과 주식회사의 설립을 허용하였다.

러시아는 경제부흥의 열병에 걸린 듯 했고, 마몬토프의 계획 실현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만큼 빨랐다. 1866년 5천 킬로미터도 안 되던 철도의 길이가 1903년에 6만 4백 킬로미터에 이르게 되었다. 차르의 개혁을 통해 새로이 생겨난 중산층은 산업혁명가인 사바 마몬토프를 추종하며 그의 주도로 돈을 벌기 시작하였다. 사바는 철도 건설 사업에서처럼 새로이 생겨나는 수용에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러시아의 사회 구조를 변화시켰고 그런 과정을 통하여 더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는 제철 공장을 현대화 하고 화물차 제조공장과 조선소 건설에도 투자하였다.

그러다가 그에게 예기치 못했던 불행이 닥치기 시작한다. 1899년 어느 날 마몬토프의 집에 경찰이 들이닥쳤고 그의 죄목은 공금횡령과 음성적인 자금조달이었다. 그는 30년간 기업가로서의 활약을 역동적으로 했지만 사회의 변혁에 불만을 품은 귀족이나 정치인들이 이 사업가에 모든 죄목을 뒤집어 씌웠고 제거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는 1900년에 열린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몽땅 돌려주어야 했다. 60세였던 사바는 사업에서 물러나 모스크바 북부의 아브람 체보의 농촌으로 이사하였다. 아브람체보는 예술가들의 마을이었다. 그는 남은 여생동안에 모스크바에 개인 오페라 하우스를 짓고 러시아 역사를 주제로 한 오페라를 상연하고 젊은 천재음악가들을 발굴하고 후원하였다. 마몬토프는 살아 생전에 러시아의 메디치라 불리게 되었고 예술의 후원자로서 러시아의 문화 예술적 정체성을 부여한 사람으로 칭송을 받는다. 그는 1918년에 모스크바에서 영면에 들었다./경상대학교 경영학과

 
savva-mamontov_12-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