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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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일보
  • 승인 2015.05.2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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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문정임
몸이 아플 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건 목소리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사용하지 못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할 때에는 내면의 목소리를 종종 잃는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목소리를 잃은 게 아니라 사용하지 못할 뿐이다. 그 자리에서 재발견되고 접속되기를 바라면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병을 앓는 정도도 개인차가 있기 마련이라 목감기에 걸렸다고 반드시 소리를 못내는 것도 아니다. 그런 개인차는 타고나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 늘 궁금하다.

어려서부터 나는 정치적 강성 성향을 타고났는지 자매들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여동생은 어느 핸가 설빔 안 해 준다고 투정을 부리다가 심하게 혼난 적이 있었던 반면 언니는 언제나 집안 살림을 도맡아하며 모범 규수로 동네 안팎에 소문이 자자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특이하게도 나는 10살 무렵부터도 명절 제사나 조상님 기일에 제상 앞에 내 자리 없음을 슬퍼하며 아궁이에 불이나 때는 역할에 불만이 많았다.

‘뭐야 이건, 결국 남자들의 잔치 아냐?’ 말 없고 행동거지도 음전했던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던 것을 우리 집이나 동네에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결국 나는 동네 사람들이 다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를 실행하며 최초라는 수식어를 매단 여자가 됐다.

신기하게도 같은 이치로 전업주부가 됐지만 나는 목이 잘 쉬지 않는다. 내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 늘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여자 주부는 묵음일 때가 많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그러나 그들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이 배출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정당을 결성하는 것도 못 봤다. 기껏 나이 든 남편 집에서 밥 먹을 때 지청구나 해대는 까칠한 마누라로 묘사되는 게 고작이다. 늘 훌륭하다는 칭송은 듣지만 인기는 없고, 군자금은 항시 달리기 마련이고 혼자 활동해야 하는 주부는 독립운동가와 같다. 마을 최후의 연사였던 이 소녀 강력히 외치고자 하나 연단이 없다.

그러나 남자들에겐 어디서건 마이크가 주어진다. 가벼운 접촉사고를 냈건 외진 시골마을에 추모제가 열리건 언제나 그들의 목소리는 크고도 우렁차다. 그래서 외칠 일이 많은 그들은 결코 목소리를 놓치는 적이 별로 없다.
문정임 (생비량초등학교 방과후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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