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내의 편백나무 숲길
도시 내의 편백나무 숲길
  • 경남일보
  • 승인 2015.05.27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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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표영 (진주문인협회 회장)
허표영
진주의 많은 사람이 사는 신안동·평거동과 가까운 석갑산(石岬山) 언덕배기에 잘 가꿔진 편백나무 숲길이 있다. 주민들이 걸어서 이삼십 분이면 도달하는 이 산은 170m 정도로 낮은 편이라서 산책을 하는 기분으로 쉽게 찾을 수 있다.

편백나무 숲은 개인이 심고 가꾼 사유지다.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이 1991년 3월경부터 어린 편백나무 3만주를 심고 가꿔 왔다. 넓이가 9만㎢ (2만8500평)가 넘는 광활한 면적에 걷기에 좋은 평탄한 길이 나 있다. 심은 지 20년이 넘은 울창한 숲은 그 특유의 녹음과 향기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몸의 자연치유 효과와 마음까지 상큼한 선물을 안겨준다.

주인은 이 숲길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자유로이 내어준다. 가끔 몰지각한 사람들이 함부로 길을 내고 산림을 훼손하자 시에서 대신 주의를 당부하는 알림판을 세워 놓았다.

자연을 찾아 지치고 고단한 몸과 정신을 치유하는 에코힐링이 현대인의 선망이 됐다. 가까운 편백 숲은 장성의 축령산 자락과 남해의 편백 자연휴양림 정도가 이름이 알려져 있다. 석갑산을 오르며 편백나무의 주인이 궁금해졌다. 자신의 당면한 이득보다 먼 미래의 사람들에게 치유와 위안을 주는 나무를 심으려고 한 사람은 누구일까. 고마운 사람을 수소문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졌다.

그런 중에 편백 숲 주위에 오두막을 짓고 여러 나무들을 가꾸고 있는 김수월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됐다. 선친과 더불어 40년이 넘는 세월을 이곳에서 과수와 약초류를 재배하고 있는 그는 다방면에 박학다식한 사람이었다. 길가에 탑도 쌓고, 잠언들을 종이에 적어 나무에 매달아놓는 비상한 사람이었다. 재배한 작물을 지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고마운 분이기도 했다.

자연을 가꾸며 그 혜택을 내어놓는 사람을 만나긴 했어도, 편백나무 숲의 주인에 관한 소식은 쉽게 접하지 못했다. 다만 풍문에 이미 돌아가시고 그 자손들이 가꾸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

사람은 가고, 나무만 살았다. 어느 대도시든 시내의 산에서는 보기가 드문 편백나무 숲은 둥치가 우람하고,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빼곡하게 자라서 피톤치드 향을 아낌없이 내뿜고 있다. 나무는 이 음울하고 경사진 땅을 오르내리며 자신을 심고 거두어온 사람을 잊지 않고 기억해줄 것이다.
허표영 (진주문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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