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일칼럼] 다시, 찔레꽃
[경일칼럼] 다시, 찔레꽃
  • 경남일보
  • 승인 2015.05.2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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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숙자 (시인)
황숙자 (시인)

 

봄 한철을 꼬박 그림에 매달렸다. 덤불 속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하얀 꽃무덤. 다정하게 피어 단장한 꽃들을 그리면서 행복했다. 하고 많은 꽃 중에서 화려하고 향기 좋은 예쁜 꽃들도 많지만 나는 어쩐지 소박하고 애잔한 찔레꽃의 매력에 흠뻑 매혹되었다.

나는 그 꽃을 볼 때마다 옛날로 돌아가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찔레순을 꺾어 먹고 보리 깜부기를 뽑아 먹으며 놀던 어린 시절 소꿉동무들이 생각난다. 찔레꽃 필 무렵이면 보릿고개에 배 고팠든 이야기도 부황기 있는 모습으로 어룽어룽 떠오른다. 순백의 향기로 송이송이마다 피어나서 배시시 웃는 그리운 얼굴, 얼굴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그래서 울었지 목놓아 울었지.’

방문짝 만한 100호짜리 그림을 그리면서 통곡하듯 애절한 장사익의 노래는 하루종일 화실을 일렁거렸다.

장사익의 노래는 왠지 모르게 간절해져서 목청껏 따라 부르기도 했는데 한참을 이러고 나면 속도 시원해지고 찔레꽃에 대한 이미지도 여러가지로 떠올라 구상화이지만 나름 많은 의미를 화면 속에 표현해 넣었다.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하얀 꽃송이들과 연두 초록으로 물이 오르는 새순과 이파리들에 심취하다 보면 때때로 꽃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영 절절하고 심란해져서 감정적으로 힘들게 그림을 마무리하는 날도 있었다.

땀 흘린 보람인지 찔레꽃 그림으로 공모전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으니 더욱 잊지 못할 꽃이 되었다. 살아 가다가 때때로 마음이 적막해지고 순정해질 때면 화실 벽에 걸린 그림을 가만히 응시할 때가 있다.

이 나라 산과 들녘 거친 비 바람 속에서도 고즈넉하게 피어나는 인고의 꽃. 가꾸지 않고 돌보지 않아도 저절로 피었다 지는 민초의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서러움의 꽃이다.

하얀 머릿수건을 하고 늘 농사일에 분주하던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이 찔레꽃 이미지로 떠오르고 무심한 세월 앞에 어머니는 이제 병상에 드신 지 오래이다. 그러고 보면 찔레꽃은 내가 지향하는 관념의 세계를 상징하는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다.

어린 시절, 젊은 날의 순수와 열정이 그러하듯 진정 꽃이면 꽃 그대로 아름다울 날 있어 줄까. 그리움에 지쳐 신열이 오르면 그림 속 찔레꽃 덤불 속으로 숨어 들어 나는 혼자 운다.

사랑이 깊으면 상처가 되고 산다는 것에 때때로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붉다. 그리움으로 강을 내어도 세월이 약인지 다 그럭저럭 살아지게 마련이다. 인생은 분명 아름다운 것이라고 믿고 산다.

꽃은 한꺼번에 무섭게 피었다가 지고 갈수록 녹음 우거지고 바람이 순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잎맥은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황숙자 (시인) 경일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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