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영순 (수필가·노선생논술학원장)
페스탈로치는 교육의 아버지라 불린다. 유럽에서 교육이라는 마차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 분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가난한 사람의 구세주, 고아의 아버지, 새로운 학교의 건설자, 인류의 스승, 시인이며 인간이었고, 모든 일을 남을 위해 하고 자신을 생각한 적 없는 그의 이름에 축복있으라.’
페스탈로치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래서 고아원과 농민학교를 세워 돈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많은 일을 했지만 모두가 남을 위한 것이었다. 그 분에 대한 찬사 중 인간이었다는 대목이 가장 인상깊다. 누구나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이라 불리며 살지만 아무나 인간답게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퀴리 부인도 마찬가지다. ‘힘과 의지의 순수함, 자신에 대한 엄격함, 뚜렷한 주관,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이 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부인이 라듐을 발견한 후 방사능 오염으로 숨지자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누구나 소녀 시절은 기쁨과 절망, 비애가 공존해 가슴이 벅찰 나이다. 필자는 그 시절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며 모든 것과 단절하고 병실에 누워있었다. 육신의 병은 조금씩 회복될 수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병들어 있던 늦가을 무렵 무심히 창밖을 보았다. 놀랍게도 환각인 듯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한겨울에라도 열매를 맺겠다는 집념으로 꽃을 피운 나무를 보노라니 누군가의 시가 떠올랐다.
슬퍼마라! 시월에도 능금꽃은 피는 것이다!
한순간에 삶의 신비와 경이로움이 깨달아지는 듯했다. 시월에 핀 한 송이 꽃은 소외된 생에 의욕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그때부터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늦깎이로 피어, 찬서리에 시들고 말지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이라면 꽃을 피우려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는가. 시월에 핀 능금꽃은 내게 무엇이 안 되었음을 원망하지 말고, 무엇이 되었을 때 그에 대한 준비가 없음을 한탄하라고 가르쳤다.
나는 그날부터 더디 핀 능금꽃을 좌우명으로 간직하고 살아왔다. 좌우명이 자기를 경계하기 위한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라면 묘비명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의 묘비명도 이것이기를 소망한다.
노영순 (수필가·노선생논술학원장)
페스탈로치는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그래서 고아원과 농민학교를 세워 돈이 없는 아이들을 위해 헌신했다. 많은 일을 했지만 모두가 남을 위한 것이었다. 그 분에 대한 찬사 중 인간이었다는 대목이 가장 인상깊다. 누구나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이라 불리며 살지만 아무나 인간답게 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퀴리 부인도 마찬가지다. ‘힘과 의지의 순수함, 자신에 대한 엄격함, 뚜렷한 주관, 흔들리지 않는 판단력이 한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부인이 라듐을 발견한 후 방사능 오염으로 숨지자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누구나 소녀 시절은 기쁨과 절망, 비애가 공존해 가슴이 벅찰 나이다. 필자는 그 시절 병마와 힘겨운 싸움을 하며 모든 것과 단절하고 병실에 누워있었다. 육신의 병은 조금씩 회복될 수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병들어 있던 늦가을 무렵 무심히 창밖을 보았다. 놀랍게도 환각인 듯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다. 한겨울에라도 열매를 맺겠다는 집념으로 꽃을 피운 나무를 보노라니 누군가의 시가 떠올랐다.
한순간에 삶의 신비와 경이로움이 깨달아지는 듯했다. 시월에 핀 한 송이 꽃은 소외된 생에 의욕과 용기를 안겨 주었다. 그때부터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늦깎이로 피어, 찬서리에 시들고 말지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이라면 꽃을 피우려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 아니겠는가. 시월에 핀 능금꽃은 내게 무엇이 안 되었음을 원망하지 말고, 무엇이 되었을 때 그에 대한 준비가 없음을 한탄하라고 가르쳤다.
나는 그날부터 더디 핀 능금꽃을 좌우명으로 간직하고 살아왔다. 좌우명이 자기를 경계하기 위한 가르침으로 삼는 말이라면 묘비명은 그런 마음가짐으로 살았다는 증거일 것이다. 나의 묘비명도 이것이기를 소망한다.
노영순 (수필가·노선생논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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