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5.06.09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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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가이자 기업가였던 토머스 에디슨
토머스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은 1847년 오하이오 주 밀란(Milan)에서 태어나 미시간 주 포트 휴런(Port Huron)에서 자랐다. 에디슨은 유년시절부터 만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아 당시의 주입식 교육에 적응하는데 심한 어려움을 겪었다. 정규 교육을 받은 것은 3개월 뿐 이었으나 어머니의 열성적인 교육에 의해 점차 재능을 발휘하게 되었다. 에디슨은 집이 가난하여 어렸을 때 기차에서 사탕과 신문을 파는 일을 잠깐 동안 하였다. 기차에 있던 화물칸에다가 조그마한 자기만의 연구실을 차려놓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연구실에 불이 나게 되는데, 기차의 관계자들은 에디슨을 내쫒으면서 폭력을 행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귀를 얻어맞아 그 이후로 에디슨은 청각 장애가 생겼다고 한다.

그 당시에 모스 부호(Morse code)를 이용한 유선전신이 이용되던 시대였는데 신문을 팔던 에디슨은 그것에 흥미를 느껴 전신기사가 된다. 하지만 하루 종일 대기해야하는 전신기사에 싫증을 느낀 나머지 결국 전신기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가 만든 4중전신기는 하나의 전선을 4명의 전신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신기술이었는데 이를 통해 큰돈을 벌게 된다. 전신기 특허로 큰돈을 번 그는 1876년 세계 최초의 민간 연구소로 알려진 멘로 파크(Menlo Park) 연구소를 세워 발명을 계속하였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을 남긴 사람으로 1,093개의 미국 특허가 에디슨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다. 에디슨의 발명품으로는 1874년에 자동 발신기 개발, 1877년의 축음기 개발, 1879년의 전화 송신기 개발, 1909년 엔진형 개발, 축전지개발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가장 높게 평가되는 부문은 역시 도시의 밤을 환하게 밝힌 전구의 발명이라 할만하다. 전구의 발명은 발전, 송배전 부문의 발전을 가져오게 했고 각 가정마다 전기가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당시의 미국의 과학기술은 유럽에 비해 내세울게 없었다. 특히 유럽의 물리학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까지 양자역학의 창시자 막스 플랑크, 원자 구조의 이해와 양자역학의 성립에 기여한 닐스 보어, 라듐 스펙트럼과 방사능 원소를 발견한 퀴리 부부, 상대성 이론을 주창한 아인슈타인, 불확정성의 원리를 창시한 하이젠베르크 등 천재적인 학자들이 서로 경쟁하며 비약적인 발전하고 있었으나 미국은 변방이었다. 에디슨은 비록 과학적인 이론으로 토대를 갖추진 못했지만 왕성한 호기심과 실험정신을 통한 발명으로 미국을 응용기술면에서 유럽을 압도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878년에는 기계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변화시킨 최초의 발전기를 개발하였고 에디슨은 그의 이름을 딴 에디슨 전기조명 회사(Edison Electric Light Company)를 설립하게 된다. 회사가 설립되고 바로 다음해인 1879년에 에디슨에 의해서 최초의 실용 백열전구가 개발되었다. 1880년에 에디슨 램프 워크스(Edison Lamp Works)를 세워 본격적으로 전구를 제조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1881년 5월 에디슨전등회사(Edison Lamp Company)로 이름을 변경했으며 1884년 주식회사가 되었다. 1882년에 뉴욕시 최초의 중앙 발전소 건설에도 참여하게 된다. 1892년에는 에디슨 전기회사와 발전기와 전등 제조업체인 톰슨 휴스턴과의 합병으로, 제너럴 일렉트릭(General Electric Company)이라는 이름의 현재의 GE가 탄생하게 되었다.

에디슨은 한평생 발명과 사업에 몰두하였지만 가족에게는 정말로 무심하고도 소홀했다. 그랬던 탓인지 그에게 세 아들이 있었지만 자식들의 삶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첫째 아들은 가짜 건강기계를 만들어 팔다 고발당하는가 하면 둘째는 하는 사업마다 망해서 매주 40달러씩 생활비를 대주는 처지였다고 한다. 다만 셋째 아들은 정계로 진출해 훗날 뉴저지 주의 주지사가 되긴 했지만, 그마저도 아버지 얼굴을 평생 봤던 시간이 채 1주일도 되지 않았다고 털어놓을 정도였다. 에디슨은 말년에도 발명에 대한 의욕을 접지는 않았지만 크게 성공하는 발명이 없는 가운데 1931년 10월에 여든네 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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