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들어가는 길
집으로 들어가는 길
  • 경남일보
  • 승인 2015.06.10 09: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표영 (진주문인협회 회장)
허표영

단독주택에 살 때는 골목길을 거쳐 집으로 들어갔는데, 요즘은 아파트에 사니 엘리베이터를 통해 들어간다.

골목길은 자연의 길이다. 땅을 밟고, 바람을 맞으며 걷는다. 하늘도 바라보고, 잡초나 꽃과 눈을 맞추기도 한다. 시야는 뚫려 있고, 호흡은 가뿐하다.

엘리베이터는 인공의 길이다. 버턴을 누르고 그냥 서 있으면 된다. 시야는 닫혀 있고, 공기는 갑갑하다. 다왔다는 금속성의 소리를 들으며 쫓기듯 내린다.

골목길은 정의 공간이다. 오고가면서 만나는 사람과 말이나 눈짓으로 인사를 나눈다. 사람 사는 얘기를 하면서 함께 걷기도 한다. 같이 기뻐하고, 슬퍼하며, 안타까워하고, 놀라기도 한다. 인정을 함께 나누는 따뜻함의 길이다.

엘리베이터는 침묵의 공간이다. 함께 탄 사람과는 말을 나누지 않는다. 가벼운 목례를 주고받을 때가 있지만 대화는 없다. 서로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두리번거린다. 편리함만 느끼는 밀폐된 공간이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갈 수 있는 걷지 않는 길이다.

골목길은 이야기를 가진다. 운동, 놀이를 즐기던 아이들이 이만큼 컸다, 옆집 아저씨는 승진을 하였고, 막다른 집에는 가족 중 아픈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의 오랜 내막을 골목 안 사람들은 대개 잘 안다. 과거의 사연과 현재의 형편, 그리고 미래의 설계까지 이야기를 만들며 소문이 흐른다.

엘리베이터는 현재만 존재한다. 지금 이 학생은 학원엘 가고 있고, 출근, 운동, 쓰레기를 비우는 사람이 타고 있다. 뭘 하다가 나왔는지 알려주지도 않지만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시차를 두고 내릴 뿐이다.

골목길은 삶이 함께하는 아날로그 현장이다. 살 냄새와 땀 냄새가 배어 있다. 사람 사는 느낌이 살아 있는 소통의 장소다.

엘리베이터는 편리함을 누리는 디지털 공간이다. 정확하고 빠르다. 첨단시대를 사는 고마움이 느껴지는 과학기술의 현장이다.

골목길을 통하여 집으로 들어올 때는 만난 이들과 교류한 감정을 담아 오지만,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어올 때는 숫자의 변동을 놓치지 않았다는 안도의 마음을 안고 들어온다.

허표영 (진주문인협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