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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 플러스 <119>소룡산 바랑산옛 사연을 품고 겹겹의 초록 속으로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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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1  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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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룡산·바랑산(760·780m)은 산청 오부면과 거창 신원면에 있는 지척의 산이지만 등산인들 사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황매산 웅석봉 지리산 등 주변 산의 수려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빼어나거나 높지 않을 뿐더러 신촌, 개미막골, 예동, 왕촌 등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지라는 점도 한몫했다.

산 속에는 임진왜란 때 우리 조상들이 부모에게 행한 효심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인 강굴과 홍굴이 남아 있는가하면 인근 신원에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눈 뼈아픈 사연까지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런 흔적들은 길고 긴 세월에 묻히고 묻혀버렸고 이제 노송 측백 주목 비자 가문비숲 등 자연이 펼치는 아름다운 녹색의 하모니만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다.

바랑산 소룡산의 이름에 얽힌 이야기도 재미있다. 바랑은 ‘둥지’(본뜻은 스님의 배낭)를 뜻하고 소룡의 ‘소’자도 ‘둥지나 집’을 뜻해 바랑산은 새의 둥지, 소룡산은 용의 둥지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두개의 산은 ‘용과 새의 보금자리’가 된다.

또한 이 산 들머리에 있는 오휴(烏休)마을은 한자 ‘까마귀 오’에 ‘쉴 휴’를 써 까마귀가 쉰 곳을 의미한다.

임진란 때 강언연공이 진양(진주)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피난을 가던 중 흰 까마귀가 막대기를 물고 가는 곳을 보고 뒤따라가니 바위 밑 홍굴에 머물러 그곳에 터를 잡아 살았던 것이 유래돼 이 마을을 오휴로 불렀다 한다.

새의 조상이 공룡이라는 것이 고고학계의 정설인 점을 감안하면 오랜 과거에 이런 이름을 갖게 된 연유가 우연인지 필연인지도 사뭇 관심 가는 대목이다. 이를테면 바랑 소룡산은 새와 관련이 있는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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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산로는 오휴마을에서 출발→홍굴→망바위→진귀암 갈림길→강굴→소룡산 정상→무제봉→새이덤→530m 갈림길→700m소봉→바랑산→임도→예당마을→거창 신촌마을→산청 신촌마을. 대략 12km, 5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오전 9시 20분, 산청군 오부면 오휴마을에서 출발한다. 까마귀의 휴식처 표지석 뒤로 정자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서 있다. 공터에는 모내기를 끝낸 트랙터가 하릴없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돌틈 사이 시멘트를 발라 쌓은 돌담이 아늑하긴하나 고풍스럽진 않다. 마을 뒤 임도를 따르면 소룡산 1.7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나오고 곧장 산길로 들어간다.

취재팀은 6월의 뜨거운 태양에 쫓기듯 숲의 그늘로 빠르게 밀려들어간다. 통나무로 계단을 조성한 등산로는 오래됐는지 빛이 바래 정비가 필요한 수준이다.

홍굴은 등산로에서 벗어난 지점에 있다. 오촌 선생 문집 서문에 임진왜란 때 산청 금서면 매촌 신풍에서 홍씨 증조부 오촌 선생이 부모형제와 함께 들어와 피난생활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절벽의 바위가 무너져 내리면서 입구가 막혀 현재 출입구를 알아 볼 수 없는 점이 아쉽다.

출발 50여분 만에 육산의 길은 끝나고 크고 작은 바위지대가 등장한다. 바위지대와 나무 사이를 갈지자로 비켜서 비비고 올라서면 망바위 전망대다.

산 아래 저수지와 오휴마을, 멀리 거대한 지리산이 보인다.

오전 10시 22분, 능선 갈림길에 선다. 왼쪽 500m지점에 진귀암이 있다. 소룡산 정상은 오른쪽 방향, 성글고 날카로운 바위지대 곳곳에 빛바랜 로프가 늘어져 있다. 800m가 안 되는 낮은 산이라고 얕볼 수만 없는 너덜과 암릉이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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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굴


강굴은 등산로에서 벗어난 오른쪽 20m지점에 있다. 거대한 바위 아래 가로 세로 1.5m의 크기의 굴이다.

밖에서 보면 작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5∼6명은 기거할 수 있는 넓은 공간에다 음용가능한 수준의 깨끗한 샘물까지 나온다. 자연석에 생긴 것이지만 누군가 인위적으로 판 것처럼 아늑하다. 신기할 따름이다.

이 역시 임진왜란때 진양에서 강 언연공이 부모님을 모시고 소룡산으로 들어와 이 석굴을 발견해 이곳에서 은거했다. 그는 부모님의 신변 안전을 위해 주변에 성을 쌓고 수년간 생활하다가 난이 끝난 후 이곳을 떠났다고 한다. 강굴 오른쪽 위 석벽에 ‘진양강씨세수’라고 새겨진 여섯 글자가 아직도 남아 있어 당시 그의 생활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다. 그 후 마을 사람들은 이를 강굴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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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굴 석벽에 새겨져 있는 ‘진양강씨세수’


강굴을 벗어나면 이름이 없다는 뜻의 무제봉. 소룡산 정상 아래 암팡진 곳을 말한다. 500여년 전부터 오부면 부곡지구에 비가오지 않고 가뭄이 계속될 때 행정관청인 면과 주민이 기우제를 올렸던 곳이다.

헬기장 지나 오전 10시 46분, 소룡산 고스락에(760m)에 닿는다. 오른쪽 황매산, 왼쪽 바랑산 철마산 갈전산 방향이다.

새이덤은 정상에서 5분정도 내려서면 오른쪽에 보인다. 육산 등짝에 달라붙은 우람한 바위 더미다. 마고할미가 바랑에 넣고가다 흘린 바위라는 전설이 있다. 멀리 보이는 마을은 거창군 신원면.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연을 담고 있다.

한국 전쟁 때인 1951년 2월 초순, 일부 국군에 의해 지역주민 663명이 집단적으로 희생 당한 마을이다. 국군은 적들이 주둔할 근거가 되는 마을이나 양식의 씨를 말려 들판을 깨끗이 한다는 이른바 ‘견벽청야’ 작전을 양민들을 대상으로 감행했다. 신원에는 희생된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조성한 추모공원이 있다.

이때부터 고도를 급히 낮춘다. 지금까지 올라왔던 알토란같은 고도를 쉼 없이 까먹으며 최대 해발 530m까지 떨어진다.

소룡산 오름길에 있는 통나무계단과 같은 시기에 조성한 계단이 모두 망가져 휩쓸렸을 정도로 급경사다. 이 방향으로 오름길을 택했다면 더운 날씨에 고생했을 구간이다.

다시 고도를 높이고 700m 소봉을 지난다. 이때부터 비교적 완만한 경사로를 보여 편안한 산행을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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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바위에서 바라본 지리산 줄기


낮 12시 19분, 바랑산 정상에 도착한다. 소나무 잡목이 주변을 가려 전망은 없어도 마음 편한 휴식을 취하기에 적합하다. 하산 길은 짧다. 30여분도 안 돼 임도를 만나고 논길을 따라 예당마을까지 하산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착오가 발생하고 말았다.

예당마을에서 아스팔트길을 따라 차량을 대기시켜 놓았을 신촌마을 목적지에 닿았으나 웬걸 이 마을에 차량이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은 거창군 신원면 신촌이라 했다. 또 다른 신원마을은 산청군 오부면에 있다 했다. 출발할 때 내비게이션에 무심코 ‘신촌마을’을 검색해 차량을 이동시켜 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옛날에도 오지, 지금도 여전히 오지인 이곳에서 택시를 부를 수도 없는 노릇, 별 수 없이 산청 오부 신촌마을까지 시멘트 임도를 따라 1시간을 더 걷는 수고를 감수해야했다.

차량 2대를 이용해 오휴마을에서 출발해 소룡산 바랑산을 지나 신촌마을로 하산하려는 산행객은 반드시 차량 한대는 ‘거창군 신원면 신촌마을’에 이동시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오후 2시 45분, 산청 오부면 신촌마을 뒷산에는 인근 축산농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뇨냄새가 온 산을 뒤덮고 있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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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 측백 주목 비자 가문비 등 녹색의 하모니가 펼쳐지는 소룡 바랑산 숲길. 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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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룡산 아래에 있는 새이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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