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원칼럼] 비봉산의 메아리
[객원칼럼] 비봉산의 메아리
  • 경남일보
  • 승인 2015.06.15 15: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만진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현대 도시계획에서 도시 내에 바람길을 조성한 원조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시라 할 수 있다. 이곳에는 세계 굴지의 최첨단 공장과 산업시설들이 즐비해 있다. 또한 항공기는 물론이고 세계대전 때 연합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독일 탱크가 생산되기도 했던 군수산업도시이다. 이 때문에 연합군 주 공격목표가 됐고 폭격으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했다. 전쟁이 끝난 후 건축 및 도시계획가들이 망가진 도시를 새롭게 조성하는 일을 하는 중에 ‘바람길’이라는 개념을 우연히 발견하게 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모형을 만들어 도시구상을 위해 담배를 피우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연기가 건물과 도시공간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이를 착안했다고 한다.

바람길은 문자 그대로 바람이 지나가는 통로인데, 산업혁명 이후 공해 등의 도시 환경문제 해결방안을 위한 중요한 도시계획 요소로 떠오르게 됐다. 진주처럼 슈투트가르트에도 시내 중앙을 관통하는 강과 산악지형이 있어 불규칙한 도로가 교통정체를 가중시켜 매연문제를 야기했다. 이뿐 아니라 분지인지라 뜨겁고 나쁜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안개처럼 깔려 있게 됐다. 이는 공기질 악화와 여름철 온도상승을 부추기게 되는 소위 ‘열섬현상’으로 이어졌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은 도시 내에 바람길을 조성하는 것이고, 이는 녹지조성으로 표면 온도차를 이용해 바람을 발생시킴으로써 만들 수 있다. 특히 분지에서 무거운 매연을 도시 밖으로 몰아내기 위해서는 녹지를 산 위에서부터 도심 내부까지 연결해 찬 공기를 끌어들여 대기를 순환시켜야만 한다. 이를 위해 슈투트가르트 시당국은 녹지조성에 필요한 대지 매입을 끊임없이 추진함으로써 도시 내에 청정환경을 만들 수 있었다.

사실 바람길을 이용한 친환경적 도시계획 방법은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다. 이는 진주에서도 사용된 지형에 순응하는 친환경적 배산임수 방법이다. 비봉산은 예로부터 진주의 풍수상의 주산으로서 도시환경조절 기능을 담당해 왔다. 여름에는 녹음과 남강까지 연결된 녹지축을 형성해 시원한 공기를 도시 내에 제공했다. 겨울에는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아 도시를 보호하기도 했다. 이뿐 아니라 최근 경관법 등에서도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 개방된 조망을 위한 생태 ‘통경축’의 정점에 서 있다는 큰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비봉산은 단순한 물리적인 기능을 넘어 진주의 상징이자 정신이 깃든 곳으로 여겨져 왔다. 비봉산 바로 아래에서 태어나 자랐던 필자에게도 이곳은 최고의 생태 놀이터였다. 여름에는 아카시아꽃잎을 따먹고 매미를 잡으러 다녔고, 가을에는 도토리 등을 채취했다. 이러한 생태 보고가 어느 날부터 시작된 대규모 건축물의 축조, 아스팔트 자동차도로 개설, 무분별한 농업개발 등으로 서서히 망가져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최근 민관학이 함께 나서 비봉산을 다시 살리는 노력을 경주하기로 했다. 비봉산이 본래 모습을 되찾게 돼 옛날에 새벽 정상에서 불러댔던 우렁찬 메아리 소리를 다시 한 번 들려 줄 날을 기대한다.

 
최만진 (경상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객원칼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