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는 주로 전후 역사 해석과 연관돼 오랫동안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명박 정권 후기에서 시작해서 현 정권에까지 연장되고 있으니 양국의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정치-외교-안보 협력에도 큰 차질을 일으키고 있다. 이제 한일수교 50년 기념식을 계기로 양국이 닫친 외교에서 열린 외교에로 가는 길목에 선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역사수정주의, 즉 역사 해석과 위안부 문제에 있는 것이다. 만일 아베 수상이 E.H. Carr의 역사 인식론을 읽었더라면 문제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의 역사 인식론은 역사가 단순히 지나가버린 과거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현재 무엇인가 전달하려는 어떤 전달체라는 것이다. 그는 역사의 전달체를 이해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아베 총리는 한반도의 침략을 진입으로 정의하면서 식민지 지배기간에 한국을 현대화하는데 기여했지 손상을 입히지 않았다는 몰지각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더 나가서 위안부에 관한 고노 담화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무라야마 담화를 부정하면서 사죄의 뜻을 밝힐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더 한심한 것은 최근 미 합동의회 연설에서 이 문제에 대해 몰지각적인 발언을 해서 미국의 다수 시민을 비롯한 세계 지성인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독도에 대해서도 몰지각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독도는 512년 신라시대부터 한국 고유의 영토로 돼 있고, 메이지 정부 외무성도 독도는 조선의 부속령으로 기록했다. 20세기초 고종이 칙령 제40호를 발표해서 국제법으로 한국의 영토로 국제사회에서 공인됐다. 단지 35년간 식민지 지배기간 한국의 주권이 작동되지 못했을 뿐이다.
첫째, 아베가 고노와 무라야마 담화를 분명하게 인정한다면 정치적 도덕성을 회복할 것이다. 그 바탕에서 국제사회로부터 그의 정권에 대한 지지를 받을 것이다. 또한 최근 발표한 집단적 안보구상에 대해서도 부정적 반응을 어느 정도는 희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양국 경제협력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다. 활기가 지속될 경우 한일 FTA를 논의할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양측에서 관세동맹을 체결해 더 큰 통상환경을 만들어 갈 것이 예측된다. 또 아시아통화기금(AMF)에 대한 대화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위에서 언급한 환경이 조성될 경우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 오는 동아시아의 재균형(rebalance)전략에도 긍정적으로 부합할 것이다. 넷째, 한일 간 문화 및 관광교류가 다시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문화 및 관광교류의 확대는 미래 세대가 협력 속에서 공존할 수 있는 신뢰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쌍방향 지혜이다.
마지막으로 한·중·일 역사를 이해하고 적극적 공존의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3국 역사교육 프로그램을 공동으로 제작해 3국의 대학생들을 교육하는 일이 절실하다. 이미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에라스무스 교육프로그램을 유럽연합(EU)차원에서 제작, 함께 사는 방식을 교육해 오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젊은이들은 전쟁이란 것을 생각할 수 없게 됐다. 열린 외교가 결코 우리의 원칙을 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키는 것이다.
허만 (부산대학교 명예교수·한-유럽연합포럼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