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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산플러스 <120>거창 월여산전쟁의 아픈 역사 숨겨진 오지 중의 오지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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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6.25  21: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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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만? 아, 거기 산 속에서 감재와 고매, 벼 보리 심어 묵고 살았제. 물이 맑고 공기가 좋았어. 많이 살 때는 30가구가 넘게 살았지, 옛날 얘기여.” 길도 차도 없던 때라 30년 전에 이리(신기)로 내려 왔제.”

신기마을에서 만난 김쌍진(65)씨는 옛 원만마을에 살았던 기억을 풀어놓았다.

거창군 신원면 월여산 기슭 옛 원만마을은 오지 중의 오지다. 그 오지에 살던 주민들은 30년 전 산에서 내려와 신기마을에 합류해 살고 있다.

이날 산행 중에 들런 옛 원만마을엔 형체만 어렴풋이 남은 폐가 터와 무너진 돌담만이 오래 전 이곳이 마을이었음을 알려줄 뿐이었다. 작업 중인 포클레인은 옛 마을 주변에 사방공사를 하느라 계곡을 파고 땅을 고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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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담만 남은 옛 원만마을 빈집터.


월여산(863m)은 거창군 신원면 구사리, 대현리, 와룡리의 경계에 위치한다. 구사리 쪽에 신기마을을 품고 있다. 세개의 봉우리로 이뤄져 삼봉산이라고도 한다. 한때 달맞이를 했다하여 월영산이라고 불렸고, 농사철 비가 오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밝은 달 아래서 풍년을 기원하며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태고 적 이 산에는 마고할미 박랑의 외동딸 월여가 살았다. 백옥같은 하얀 피부를 가진 월여의 목욕 장면을 훔쳐 본 옥황의 아들 일야가 그를 짝사랑하게 됐다. 하지만 이룰수 없는 사랑에 좌절하고 이때 흘린 눈물이 비가 됐다. 이 마을에 깃든 기우제 태동 전설이다.

▲등산로는 신기마을→옛 원만마을→칠형제바위봉→정상 1봉, 2봉, 3봉→철쭉군락지→지릿재 갈림길→신기마을에 원점회귀 한다. 산행거리 10㎞, 휴식시간 포함 5시간이 소요된다.

▲오전 9시 30분, 산행은 신기마을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1987년 태풍 ‘셀마’로 물난리를 겪으면서 많은 가옥이 무너져 새 단장을 했다. 오지라지만 지금은 집집마다 번듯번듯한 태양집열판을 옥상에 설치해 온수를 해결한다. 원만주민 20여 가구가 산에서 내려와 하나의 마을을 이루고 있다.

들길 가운데로 난 들길을 따라 오르면 젖줄인 저수지, 수호신 정자나무, 다락논 끝에 옛 원만마을이 있다.

돌담은 무너졌고 집터는 잡초로 뒤덮였다. 경남산림환경연구원이 발주한 거창신원 구사지구 산림유역관리 사업으로 포클레인이 작업을 하느라 굉음을 내고 있다. 사방댐 5개소 교량 2개소 등을 건설하는 이 공사는 10월까지 계속된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등산로는 오른쪽 산 등날로 나 있다. 이정표는 정상까지 2.1km, 여느 산처럼 처음부터 숨이 깔딱 넘어가는 된비알이다.

50분 만에 7형제바위봉에 닿는다. 가로 세로 2m크기 큰 바위서부터 작은 돌이 연이어져 있다. 안내판 하나 없는 것으로 미뤄 특별한 사연이 있어보이진 않지만 다닥다닥 붙은 형상이 영원토록 떨어지지 말자며 형제애를 과시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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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형제바위


뒤로 감악산, 비계산, 오도산의 산세가 띠를 두르고 있다.

거창양민학살사건 추모공원에서 올라오는 갈림길과 이름 없는 무덤을 지나면서 이 산의 자랑인 화강암릉이 등장한다. 거칠고 높은 암릉을 손쉽게 오를 수 있도록 통나무로 계단을 설치해 놓았다.

거창양민학살사건은 한국전쟁 때 일부 국군에 의해 무고한 양민 700여명이 학살됐다. 16세에서 60세가 300명, 60세 이상 노인이 60명(남자 327명, 여자 392명)이다. 특히 15세 이하 남녀 어린이 359명이 살해됐는데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죄악인 것이다.

당시 11사단장인 최덕신 준장, 9연대장인 오익경 대령, 3대대장인 한동석 소령 휘하의 병력들이 총검을 휘둘렀다. 이 산 밑에 이들을 추모하는 공원이 건립돼 있다.

통나무계단 끝에 올라서면 왼쪽에 신선경이라 할 만한 비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땅속 깊이 은밀하게 숨어 있던 백색 화강암이 지상으로 밀려 올라와 제각기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바위사이 골골에 소나무 등 키 작은 관목이 적절하게 배치돼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만물상은 아니라도 백가지 물상은 된다. 주능선은 그곳으로 향하지 않고 고스락에서 오른쪽으로 비켜간다.

산 아래서는 특별하게 눈에 띄는 산이 아니었는데 다가갈수록 매력이다. 아늑한 길, 소담한 길, 웅장하지 않아도 조형성이 돋보이는 화강 암릉. 문득, 소나기 지난 뒤 찬연한 빛의 무지개가 뜰 것같고, 일야의 연인 월여도 나타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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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지 기묘한 형상을 한 월여산 화강암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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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을 걷다보면 이런 느낌이 온몸을 감싸 안는다. 오지여서 찾는 이가 적을 뿐 거창의 여러 명산에 비견된다.

오전 11시 33분, 정상의 조망은 북으로 감악산, 동으로 소룡산, 악견산, 금성산, 남으로는 황매산, 서쪽으로 갈전산과 바랑산이 에둘러 있다.

정상에서 다시 고도를 낮춘다. 또 다른 암릉 제2봉으로 연결된다. 이 코스 역시 백옥의 화강암이 더미를 이룬다. 때로는 한 가닥 로프에 의지한 채 위태로운 바위 끝을 아슬아슬하게 올라야 한다. 설사 설악의 비경, 매화산 절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로프에 의지한 채 바위를 오르거나 나무를 붙잡고 내려서면 마지막 3봉이다. 뒤돌아보면 비음 섞인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진행방향 정면 멀리에는 가뭄에 황톳 빛을 드러낸 합천호. 호수면 비취색과 어울려 색의 조화를 이룬다. 그 뒤로 거대한 피라미드형 악견산과 금성산, 허굴산이다.

발아래는 소야마을 갈림길을 기준으로 철쭉군락지 평원, 양떼와 소떼가 있다면 대관령의 목장이나 제주의 평원을 방불케 한다.

오후 1시 5분, 고도를 한껏 낮춰 소야마을 갈림길에 닿는다. 평원에는 누구나 한번쯤 꿈꿨을 낭만과 공상의 정취가 묻어난다.

높은 하늘 밑, 낮게 깔린 초원 위를 ‘휘∼휘’거리며 내달리던 골바람은 듬성듬성 위치한 소나무의 쳐진 가지를 세차게 흔들어 놓는다. 소나무 아래에 놓인 도시풍의 공원 벤치는 생뚱맞지만 이국적이고 공상적이다.

5월 초 평원에 철쭉꽃이 피면 상춘객이 붐빈다. 신원면 주민자치센터에서는 매년 철쭉제 및 면민안녕 기원제를 올리고 있다.

다시 키다리 풀 서걱거리는 비스듬한 언덕엘 휘적휘적 오르면 이때부터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관목이 얼굴을 스친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으나 진행하면 할수록 성가실 정도다.

오후 1시 40분, 지릿재에 도착한다. 수백년 된 서어나무가 죽은 채 서 있다. 직진방향으로 진행해도 신기마을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으나 취재팀은 지릿재에서 하산을 택했다.

하산 길 주변에는 산딸기가 발갛게 익어간다. 사방댐에도 물이 없을 정도로 가뭄이 심각한 계곡이 길 옆으로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한다.

마을 상부에 빈집들이 몇 채 보인다. 주인을 떠나보낸 지 꽤 오래 됐는지 지붕이 허물어져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정자 영사정은 1920년 능성구씨 후손들이 구광세 공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 종친의 화합과 효행, 훈육의 전당으로 활용됐다 한다. 오후 2시 30분, 뙤약볕이 따가운 신기마을에 원점회귀한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 ㅜ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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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닥 로프에 의지한 채 위태로운 바위 난간을 아슬아슬하게 돌아오르는 취재팀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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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호와 악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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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야마을 갈림길 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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