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 첩어의 비결은 무엇인가
[교단에서] 첩어의 비결은 무엇인가
  • 경남일보
  • 승인 2015.07.12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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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 (명신고등학교장)
누군가 말했다. 음악이 사람을 감동시키는 까닭은 빠르되 호들갑을 떨지 않고 드러내되 노골적이지 않으며 심오하되 어둡지 않고, 부드러우면서도 의연할 수 있으며 곧으면서도 능히 완곡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음악은 깊이 생각하고 상상하게 만들기도 하고 마음속에서 감격스러움이 배어 나오기도 하며 흐느껴 울게도 만들고, 정성스럽고 간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소리가 사람의 귀에 들어오는 순간, 모골이 송연하여 겁이 나기도 하고 애태우며 마음이 허해지기도 하고, 빙그레 웃기고 뭔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첩어를 구성할 때 음악적 비결을 사용한다. 예로 햇볕은 쨍쨍, 바람소리는 솨솨, 나무 찍는 소리는 쩡쩡, 새들은 지지배배, 발자국은 저벅저벅 등 실제 소리를 전달하고자 한다. 지지배배는 새들이 몸을 비비며 주둥이를 모아 지저귀는 모습이 연상되고 소리가 들린다.

준첩어로 이쪽저쪽 및 이리저리, 허둥지둥, 이러쿵저러쿵 등이 있다. 어떤 비결로 구성되었을까. 이쪽저쪽은 이쪽과 저쪽의 합성이며 쪽은 방향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쪽은 보는 이의 어느 쪽인가. 저쪽이 왜 뒤에 올까.

사람은 습관적으로 좌측을 먼저 본다. 사주경계 요령은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가까이서 먼 곳으로 반복 관찰하는 것이다. 나의 좌측은 상대방의 우측이라 상대를 살핀 후 행동하는, 본능적으로 이쪽을 먼저 다음에 저쪽으로 행동 유형이 굳어진 것이 아닐까. 우측보행을 행동지침으로 시행되고 있다.

이리저리에서 ‘리’는 공용이며 ‘이’를 ‘저’보다 앞에 놓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리이리라는 말은 저절로 사장되었을까. 만약 ㄱㄴㄷ…의 순서로 성어가 되었다면 허둥지둥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준첩어는 운율에 맞게 혀로 굴리기 쉽고 들으면 웃고 깊게 생각하게 하는 느낌을 주는 말임에 틀림없다.

이광수의 단종애사에 유난히 첩어나 준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왕은 인지가 머뭇머뭇 어물어물하는 태도에…’ 또는 ‘옳은 사람을 모해한 무리들이 하늘 어느 구석에서 이제나저제나 무슨 천벌이….’ 단종애사가 오랫동안 넓은 독자층을 유지하는 비결에는 복합어를 많이 사용한 것이 아닐까.

메르스 등으로 우울한 요즘, 부드러우며 빙그레 웃게 하는 말로 분위기를 바꾸어 보자.

 
안명영 (명신고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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