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5.07.1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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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반도체 제조사 인텔과 CEO 앤디 그로브
1936년 유대인으로서 헝가리에서 태어난 앤드류 그로브(Andrew S. Grove)는 홀로코스트를 겪은 후 1956년 스무 살의 나이에 단신으로 미국 망명을 감행했다. 당시 수중에는 단돈 20달러가 전부였다. 그는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1963년 UC버클리에서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반도체 회사인 페어차일드(Fairchild)를 거쳐 1968년 인텔(Intel) 창업 때 참여하였고 1979년부터 20년 동안 최고경영자로 활동하면서 과감한 결단과 독특한 경영 수완으로 인텔을 세계 최고 회사로 만들었다. Intel이라는 이름은 최초 설립 당시의 이름이었던 Integrated Electronics에서 따왔다. 대표 생산품은 CPU와 컴퓨터 관련 칩셋이며, 랜 제품이나 SATA/레이드 컨트롤러, 임베디드 제품군, 서버,SSD 등 컴퓨터 전반에 걸친 제품군을 생산하고 있다. 데이터 처리용 라이브러리나 컴파일러도 만들며 세계 최초로 플래시 메모리의 양산 형 모델을 만든 곳도 인텔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제조사로 전 세계 PC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본사는 캘리포니아 주 산타클라라에 있으며 반도체 제조 공장은 캘리포니아 주 새너제이에 있다.

세계 PC 산업에서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다. 현재 남은 글로벌 PC 업체는 HP, Dell, 에이서, 아수스, 레노보, 소니, 애플 정도이다. 1980년대 중반 일본 경쟁사들의 거센 도전으로, 인텔은 순이익이 200만 달러로 곤두박질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반도체 D램은 사실상 인텔이 개발해 압도적 시장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임직원들은 위기상황으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앤드류는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메모리 사업에서 손을 떼는 대신 <인텔, 마이크로컴퓨터 회사>라는 비전하에 컴퓨터의 두뇌라 불리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올인 하기로 하였다. 기존 8개의 D램 공장 중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 체제로 전환했다. 직원 7천200명을 떠나보내고 공장을 두 곳이나 닫아야하는 고통도 뒤따랐다. 하지만 인텔은 1992년 마이크로프로세서 분야 최강자로 도약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인식한 앤드류는 1991년 1억 달러를 투입해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개발에 착수했다. “첨단산업에서, 그것도 부품 브랜드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라는 반발이 강하게 제기됐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이 브랜드 덕분에 인텔은 컴퓨터 제조회사들과 강력한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면서 시장의 80%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INTEL Inside’ 로고를 부착한 컴퓨터는 다른 컴퓨터보다 10% 높은 가격에 팔리게 되었다. 그리고 한창 잘나가던 1994년, 한 수학교수가 펜티엄 칩의 계산 기능에 문제가 있음을 제기했을 때, 초기에는 사용자가 2만 7천년에 한 번 겪는 오류 정도로 쉽게 넘겼다. 그러나 언론의 비판이 거세지고 여론이 악화되자, 그는 ‘무조건 보상’이라는 결단을 내렸고,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 비용으로 4억 7,500만 달러를 과감하게 지출했다.

앤드류는 “기업에는 크고 작은 바람이 존재하고 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많지만 어떤 것은 태풍으로 돌변하며 기존의 비즈니스 구도를 송두리째 뒤엎어놓는다.”면서 이를 ‘전략적 변곡점’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는 “전략적 변곡점에 잘 대처한 기업은 번성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망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앤드류 그로브는 인텔에 어느 누구든 간에 아무리 나쁜 소식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전달하고 토의할 수 있는 ‘건설적 대립’의 조직문화를 정착시켰다. 그러면서 직원 교육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리고 그는 엄격한 규율과 완벽함을 추구했기에 냉소적인 반응도 없지 않았지만 그는 솔선수범하는 CEO로 자기 자신에게는 더욱더 엄격했었다. 그의 사무실은 칸막이만 있을 뿐 명패도 없었고, 직접 차를 몰았다. 그리고 그는 강한 의지력으로 전립선암을 극복해냄으로써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엮어내기도 하였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앤디그로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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