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좋은 날
기분좋은 날
  • 경남일보
  • 승인 2015.07.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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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순 (수필가· 노선생논술학원장)
노영순
아침이면 아들이 고향 집으로 전화를 합니다.

“어머니, 둘째입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 “어. 머. 니. 둘.째.입.니.다.” 서로 여보세요를 외치다 전화는 끝이 납니다. 며칠 후 아들이 전화를 합니다. 목이 터져라 어머니 둘째입니다를 외칩니다.

아파트 위아래층까지 다 들릴 지경입니다. 아들은 여보세요를 외치고 노모는 여보시오를 외치다 전화를 끊습니다. 오늘도 전화는 별 소득없이 끝났습니다. 아무리 성능좋은 보청기도 팔십 노모에게는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또 전화를 합니다. “어. 머. 니. 둘.째.입.니.다.” “ 여보시오. 우리집 양반은 집에 없습니데이. 이따가 저녁에 하이소” 전화는 속절없이 끊어집니다. 저녁이 되어 퇴근한 아들은 다시 전화를 합니다. 그러나 노모는 이미 잠든 지 오래입니다.

젊은 날의 노모는 무척 부지런하셨지요. 이런 초저녁에 잠이 드실 분이 아닙니다. 명절이라도 다가오면 밤새도록 곰국을 끓이거나 엿기름을 고아 깨강정을 만드셨습니다. 아버지 생신날 아침이면 아들은 신이 나서 온 동네를 달음질쳐 다니며 ‘우리집으로 아침 드시러 오이소’를 외쳤더랬지요.

며칠 후 아들은 또 전화를 겁니다. 딱히 약속된 전화도 없고 누군가를 기다리시지도 않는데 노모는 벨이 울리면 꼬박꼬박 받습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데도 전화벨 소리만큼은 잘 들리시나 봅니다. “내는 안 들리는 사람이오. 나중에 우리집 양반 오거든 다시 하소” 어머니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습니다.

그래도 아들은 전화를 합니다. 어느 날인가 여보시오를 외치던 노모가 말씀하십니다. “둘째가? ” “네 어머니. 제 목소리가 들리능교?” “내사마 잘 있다. 느그 아덜도 잘 있제? 너도 몸 건강하고?” “네. 어머니. 제가요….” “모다 건강하그래이. 이만 끊는다 ” 오늘에야 드디어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종종 이렇게 당신이 보고 싶은 사람의 전화를 받는답니다. 하루 종일 즐거우시겠지요. 아들의 전화를 받았으니까요.

아들에게도 오늘은 참 기분이 좋은 날입니다. 아직도 카랑한 목소리가 노모의 건강함을 말해주니까요. 어쩌다 하루쯤 이런 운수좋은 날을 기다려 아들은 전화를 하는 거겠지요.

내일도 이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쯤 이런 날이 또 올까요?
노영순 (수필가· 노선생논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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