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책읽기
행복한 책읽기
  • 경남일보
  • 승인 2015.07.2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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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순 (수필가· 노선생논술학원장)
노영순
어린 시절의 기억 한토막- 친척집에 갔을 때였다. 돈보다 책이 더 많다는 말대로 방마다 책장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행본은 없고 죄다 전집류였다. 한 방에 들어가니 당시엔 보기 어렵던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이 한 쪽 벽을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금박을 입힌 영문자가 눈부셨지만 조심스레 한 권을 빼들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무척이나 가벼웠다. 정작 중요한 알맹이가 없었던 것이다. 아저씨는 수많은 책을 가지고 있었으나 한 권도 읽지 않았다. 모두 껍데기뿐인 자기 과시용의 장식품이었으니 읽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변신>을 쓴 카프카는 장사꾼인 아버지가 책을 못 읽게 하자 장부를 정리하는 틈틈이 읽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독서란 훔친 시간에 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책읽는 시간을 정해 체계적으로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필자의 제일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이다.

내 사무실에는 수많은 책이 대여 번호를 달고 진열대에 앉아있다. 신간도 있지만 오래 묵은 책이 더 많다. 과학도서나 철학 책도 있지만 대부분 문학 작품들이다. 모두 나의 손때가 묻은 정겨운 놈들이라 파본이 되면 다시 매어둘망정 버리지 못한다. 어느 책장에 누가 있는지도 한눈에 안다. 아이들은 처음엔 강요에 의해 책을 빌려가나 점차 자율적으로 빌려가서 읽고 반납한다. 타율에서 능동으로 바뀌는 시점이 각기 다른 아이들의 독서 수준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을 느낄 때마다 나는 행복하다.

내가 가진 책은 수많은 학생들의 손을 거치며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키우고 정서를 충족시켜 주었을 것이다. ‘갈매기의 꿈’을 읽고 자신의 숨은 능력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장용학의 ‘요한 시집’을 읽고는 토끼 우화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질문한다. 채만식의 ‘치숙’을 권해주면서 친일 행각은 비판하되 그들이 남긴 좋은 작품은 문화유산으로 받아들여 배워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독일사(一讀一思)가 아니라 이독이사(二讀二思)를 해야 한다고 충고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요즘 세대는 책을 읽지 않는다지만 아직도 밤을 새워 책을 읽는 아이들도 많다. 아마도 이 아이들은 책읽기가 행복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내 책의 주인은 오늘 그 책을 읽고 있는 바로 그 학생들이다.
노영순 (수필가· 노선생논술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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