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연출 없는 연기와 장기요양
[특별기고] 연출 없는 연기와 장기요양
  • 경남일보
  • 승인 2015.08.26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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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현 (국민건강보험공단 함안의령지사 의령출장소장)
얼마 전 우리 장기요양 운영센터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여보세요? 거기 ○○운영센터죠? 요즘은 걸어 다니는 사람도 장기요양 등급이 나옵니까? 이거 등급판정이 잘못된 거 아닌가요? 일 똑바로 하세요.” 하시면서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은 언성 높았던 민원 전화였다.

요즘 TV나 신문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등장하는 게 있다면 아마도 노령화와 치매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2015년 7월말 현재 전국적으로 노인 인구가 660여만 명에 이른다. 노인 인구 증가와 함께 노인성 질환도 크게 늘어 국가에서도 노인장기요양보험 수혜자 폭을 지속적으로 확대 추진해온 결과, 제도 초기 1~3등급에서 지금은 1~5등급으로 그 범위가 대폭 확대되어 2015년 7월말 현재 장기요양 등급 인정자가 전국적으로 45만여 명을 넘어서고 있다.

그간 등급 외로 분류되었던 경증 치매 어르신(일명 걸어 다니는 치매환자)들까지 2014년 7월부터는 장기요양 5등급을 대부분 받아 주간보호나 인지활동형 재가급여 서비스를 받고 계신다. 아마도 전화를 주신 민원인께서는 장기요양 5등급자나 지자체에서 제공하는 노인돌봄 서비스를 받고 계신 어르신을 주변에서 보고 한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요양직 직원들 내에서는 장기요양 재신청(등급이 나오지 않아 다시 신청하는 경우)을 한 번 정도 하신 분들이라면 웬만하면 모두가 연기 대상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허위·과장 행위로 등급을 받으려는 어르신들이 많아져 현장에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조사 때는 누워서 꼼짝도 못하거나 조사자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던 어르신이 등급이 나와 인정서를 전달하기 위해 재차 어르신 댁을 방문할 때에는 집에서 빨래를 하기도 하고, 마을회관에 가서 어르신들과 수다를 떨기도 하며, 심지어는 힘든 밭일을 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물론 가벼운 정도는 애교로 봐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극히 일부이긴 하나 누군가에게 학습을 받아 조사자의 묻는 말에 아예 대답을 하지 않거나 지시하는 말에 무조건 모른다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정조사를 수행하는 직원들은 이제 웬만한 허위·과장은 쉽게 알아낼 수 있고, 또 조금이라도 허위·과장이 의심되면 반복 확인으로 그 내용을 등급판정위원회에 있는 그대로 보고하여 허위·과장 여부를 가려낸다. 이런 행동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요즘같이 경제가 어려운 때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낸 소중한 보험료 혜택이 도움이 꼭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요양보호사를 단순히 집안 청소나 설거지 하는 가사도우미쯤으로 생각하여 몸이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보호자 자신이 좀 더 편할 요량으로 장기요양 신청을 하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동안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외형적 확장을 꾀했다면, 이제는 제2의 도약을 위해 서비스의 질적 내실화가 필요한 때다. 인정조사 때 허위·과장이라는 불필요한 연기가 계속되는 한 제도의 발전은 요원하다. 진정한 장기요양보험 제도 발전은 이러한 연출 없는 어르신들의 작은 행동에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이봉현 (국민건강보험공단 함안의령지사 의령출장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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