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9월의 장미
[이준의 역학이야기] 9월의 장미
  • 경남일보
  • 승인 2015.09.1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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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로(白露)를 넘어 시절은 분명 가을임에도 길을 가다보면 길가 담장넝쿨에 피어있는 장미꽃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계절을 잊고 앙증맞게 피어있는 장미꽃을 보는 것이 이제는 어느 듯 익숙한 정경이 되어 버렸다. 하여 이해인 시인의 맑고 밝은 ‘6월의 장미’는 지금 그 이름을 잃고 있다. 또 금년가을엔 아카시아 꽃도 피었다는 소식이 있고 보니 이젠 세월과 시절의 구분이 없어져 버린 것만 같다.

인지(人智)가 극성(極盛)하여 문명의 열기(熱氣)가 극심하니 기후조차 정신을 잃어 숙살지기(肅殺之氣)를 상실하여 바야흐로 애꿎은 초목화(草木花)만 더욱 어지럽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혼돈이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상기후 탓인지, 아니면 무량한 우주의 섭리 탓인지는 아직까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국화, 코스모스, 장미꽃, 아카시아 꽃까지 덩달아 어우러져 시절의 하 수상함이 더해지니 평생 동안 굳어졌던 낡은 고정관념으로만 고지식하게 세월을 바라보는 초로의 세월이 더욱 쓸쓸하기만 할 따름이다. 무엇을 찾기 위해 그토록 애태우고 가슴조이고 아등거리며 살아왔던가. 회한만 앞선다.

전기를 상용화하여 밤을 잊게 만들고, 이제는 양자(quantum)의 시대에 접어드니 인간사는 정말 꿈과 현실이 뒤엉킨 무릉도원의 시대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조차 든다. 염계(濂溪) 선생께서 노자의 무극(無極)과 공자의 태극(太極)을 짬뽕시키면서 석가세존의 색불이공 공불이색의 버전업된 공리공론의 숱한 시비꺼리를 만들어 내더니만, 마침내 21세기 뒤엉킨 모습들이 혼돈을 더욱 재촉하는 것만 같다.

‘100번째 원숭이’에 대한 관찰이 있다. 1950년 미국 과학자 라이언 왓슨이 일본 미야자키 현의 고지마라는 섬에서 고구마를 물에 씻어먹는 원숭이를 발견하였다. 고구마를 물에 씻어먹으니 흙이 묻지 않아 좋아 이를 한 마리 두 마리 따라하고 마침내 고지마 섬의 모든 원숭이가 따라 씻어 먹는다는 이야기이다. 더 놀라운 일은 어떤 교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섬에 살고 있는 다른 원숭이들까지 고구마를 씻어 먹을 줄 알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널리 퍼져서 유행되고 있는 어떤 행동 유형은 임계치를 넘어서는 순간 급작스럽게 개체들 사이에 널리 퍼진다는 이치이다.

또 이와 유사한 현상으로 열대 식물 과일(tropical plants & fruits) 사례도 있다. 지구의 적도 중심의 열대지대에는 유사한 열대 식물이 번성한다는 현상이다. 바닷물의 조류(潮流), 고기들의 움직임, 새의 먹이와 배설물(鳥類), 동물들의 털 등의 이유로 씨앗이나 묘목이 이동하여 생육환경이 유사한 지역에서 성장한다는 설명이 우세하지만, 이런 여러 현상들 속에서는 단지 이런 이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까닭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이래저래 세상에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이야기이다. 상호 통신시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증폭된 어떤 행동이 같은 유(類)에게 전이 되고, 같은 환경 내에서 유사한 생명체가 번성하는 이런 자연 현상 속에는 현대과학으로 속 시원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분들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들의 삶이나 운명에 있었으랴.

순진하게도 이기론자(理氣論者)들은 이런 모순되고 불명확한 현상들을 이(理)와 기(氣)라는 개념으로써 통일적으로 설명하려 든다. 하지만 그래도 이들 개념들이 여전히 불투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어떻든 작금 들어 알 수 없는 변화들이 자연현상 속에서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아주 급속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만 같다.

하기에 우리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예의 주시하여야 하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영역에 걸쳐서도 관심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 할 것만 같다. 이게 예지(叡智) 아닐까.



<이준의 역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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