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의 역학이야기] 가족
[이준의 역학이야기] 가족
  • 경남일보
  • 승인 2015.10.2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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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며 눈시울을 저민다. 이제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셨던 가친과 모친에 대한 그리움이 저절로 깊어진다.

‘가족(家族)’이란 무엇일까? 아니 더 직접적으로 ‘피붙이’란 무엇일까?

저마다의 생각으로 이렇게도 규정하고 저렇게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설명들은 늘 모자라기만 하다.

설 추석 제삿날 저마다 사는 곳에서 피붙이 있는 곳으로 생고생을 하면서 달려가 만나 보아도 별 다를 것 없이 그저 심드렁하기만 한데도, 어떻든 만나봐야만 직성이 풀리고 마음이 편하고, 온몸을 적시는 기운이 개운하다. 이것이 ‘가족’이고 ‘피붙이’이다.

사람은 본래 그렇다.

아니 다양한 관찰결과 동물들도 식물들도 심지어 광물조차도 같은 것끼리 서로 응결되는 현상을 나타낸다고 하니 존재하는 세계의 모든 존재물들은 그러한가 보다.

이것이 천성이고 본질일지도 모른다.

여우도 죽을 때는 태어난 방향으로 머리를 돌려서 죽은 수구지심(首丘之心 또는 獸求之心)이 있고, 사물은 저마다 같은 것끼리 모인다는 주역 계사전의 방위류취(方以類聚) 물이군분(物以?分)이라는 개념도 있다. 이는 결국 서로 통하는 계통 간에는 보이지 않으나 한없이 이어지는 연결 끈이 확실히 있음을 통찰하는 말이라 하겠다.

가족의 사랑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역경에서라도 견뎌내게 하는 강인한 원동력이다. 잘나고 출세하고 뻐기고 자랑하는 내면의 깊은 대상도 결국은 가족이다. 아무리 자랑하여도 사랑하는 가족들이 피식하고 무시하면 맥이 탁 풀어진다. 온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찬탄을 받더라도 사랑하는 이의 진정한 축복이 없으면 그런 칭송과 찬탄은 그저 허탈하고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단한 부귀와 영화를 누리며 이름을 날리고 출세한 이들이 그 넓은 저택에서 왜 쓸쓸하게 홀로 자살하는가. 그렇게 죽은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주변에 가족이 없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는 가족, 친지, 친구, 지인들의 관심과 사랑이 결여되었거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비난이 견디기 어려울 만큼 거세져 외톨이라는 강한 ‘소외의식’이 들 때라고 한다. 반면 ‘죽이고 싶다’는 분노가 치밀 때는 사랑하지 않는 타인들의 공격과 비난이 총알처럼 자기를 향하여 날아오고 있다는 막연한 ‘피해의식’때문이라고 한다.

이처럼 가족은 사랑하기에 사소한 말 한마디에라도 어느 누가 한 말에 비하여서 쉽게 상처를 받고, 또 사랑하기에 마음 가득한 긍지로서 힘차게 살아간다. 하여 여러 이산가족 상봉에서 항상 회자(膾炙) 되는 바 공통된 점은 ‘그저 살아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그저 감사한 일이다. 이것은 이번 남북이산가족 상봉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런 가족관계의 마음의 여정을 소소하게 잘 그린 이야기가 최인호의 ‘가족’이다. 1975년 9월부터 월간 <샘터>에 연재를 시작하여 무려 35년6개월 동안 국내 잡지 역사상 가장 긴 연재소설을 썼다. 가족 간에는 그만큼 할 말들이 많다는 징표이리라.

하지만 가족관계를 깨는 것은 언제나 거대한 권력, 엄청난 재력, 거의 편견이라 할 수 밖에 없는 교리 이념 사상 등이다. 형제간의 권력투쟁, 재산상속, 이념싸움에선 피도 눈물도 없다. 그리하여 지나친 권력과 돈과 광신은 오히려 가족관계를 해친다.

어떻든 가족 간에 흐르는 이런 알 수 없는 끈끈한 기운을 윤기(倫紀)라고 한다.

윤기가 끊어지면 미움이 생기고 가족 간의 누군가가 반드시 죽는다.

천리(天理)는 말이 없지만 두렵다.

하여 이 가을 저마다 그리운 가족들을 더욱 그리워하자.

 
[이준의 역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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