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5.11.1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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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기치료제의 대명사 ‘이명래 고약’
‘이명래 고약’의 출생 비밀은 충남 아산의 공세리(貢稅里) 성당에서 비롯되었다. 공세리라는 명칭은 한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조선시대 충청도 서남부의 아산, 서산, 한산, 청주 등 40개 마을에서 조세로 거둔 곡물 등을 보관하던 공세창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한국 선교사로 들어온 프랑스인 드비즈 신부는 1895년 이 공세창고를 성당으로 개조하여 선교를 시작하였다. 중국에서 체한의학을 배운 한국에서 그는 고약을 만들어 이명래 선생에게 그 비법을 전수하였다. 이명래 선생은 1890년 서울에서 독실한 천주교 집안의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나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아산군 공세리로 이주하여 드비즈 신부에 몸을 의탁하게 된다. 잔심부름을 하며 고약 제조법과 치료법을 배우게 된 이명래 선생은 거지들을 대상으로 그가 개발한 고약의 효능을 실험하며 약효를 개선하기도 한다.

‘이명래 고약’은 그의 나이 열여섯 되던 1906년에 개발에 성공하여 종기 환자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이명래선생은 당시나 지금이나 난치병으로 여겨지는 골수염, 결핵성 임파선염, 관절염을 비롯하여 온갖 종기에 효험이 뛰어난 처방들을 개발하여 환자들을 치료해주었다. 1920년 서울로 올라와 중림동에 고약집을 열었다. 거의 매일 300~400 명의 환자들이 몰려들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명래 선생은 사별한 첫 부인에게서 딸 하나,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서는 딸 둘을 남겼다. 그래서 가업은 둘째 사위 이광진씨에게 물려주게 된다.

‘이명래 고약’의 맥은 ‘명래제약(주)’과 ‘명래한의원’ 두 갈래로 전승되어왔다. 이명래 선생의 막내딸인 이용재 여사(2009년 타계)가 운영하던 ‘명래 제약’은 경영난을 겪다가 2002년 9월부터 생산을 중단하고 말았다. 고려대 의대 전신인 경성여의전을 졸업한 이 여사는 한 때 을지로 3가에서 부친의 세례명을 딴 요한의원을 개업 운영하기도 하였다. 고려대 총장을 역임한 헌법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고 유진오박사의 부인인 이 여사는 56년 종로구 관철동에 ‘명래제약’을 세워 고약의 현대화와 기업화를 시도했었다. 서대문구 충정로의 ‘명래한의원’은 이명래 선생의 사위인 이광진씨마저 작고하자 그의 사위인 한의사 임재형 원장이 장인의 가업을 이어받아 운영해 왔었다. 그러나 임원장의 자녀들이 한의학과는 거리가 먼 직업을 선택하는 바람에 대물리기가 어렵게 되었다. 결국 ‘105년 전통’의 이명래한의원은 지난 2011년 6월에 호프집으로 바뀌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2002년 명래제약이 도산하면서 시중 약국에서 이명래 고약은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이후 판권을 인수한 GP제약이 밴드 형식으로 개량한 이명래고약, 고려됴고약, 도표됴고약, 천일조고약 등 5가지 이름으로 판매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약국에서 흔히 볼 수 없다. 이명래 고약은 1980년대까지 종기(부스럼) 치료제로 널리 쓰인 대표적인 고약의 상표였다. 4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사용해본 적이 있을 정도로 ‘전 국민의 고약’이었다. 기름종이에 손가락 한 마디 크기의 까만 고약을 싼 형태로, 고약을 성냥불에 달궈 종기에 붙여 놓으면 며칠 뒤 누런 고름이 쏙 빠지고 상처가 아문다. 값이 저렴하고 효과가 뛰어나 피부병의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었다.

명래제약이 제약 허가신고를 낼 때 고약의 기본약재인 오행초, 가래나무 등 일부 약 성분을 공개했을 뿐 여전히 이명래 고약의 다양한 약재를 비롯한 제조법은 베일에 가려진 상태다. 결국 우리나라 20세기를 대표했던 신약은 후대에 명맥을 잇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대를 잇지 못해 맥이 끊길 경우 한방 나름대로의 영역을 넓혀온 외과와 피부과 분야의 훌륭한 치료 비방이 사라지게 됩니다.”라며 안타까워하던 임재형원장의 우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이명래고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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