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7)
  • 경남일보
  • 승인 2015.11.24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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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3 (37)

“기철이?”

양지는 동그래진 눈으로 세상모르게 잠든 청년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함부로 열린 상의 자락 사이로 탄탄해 보이는 젊음이 유감없이 드러나 보이며 그 속에 담긴 정열이 숨결 따라 열심히 펌프질되고 있는 넓은 가슴, 목이 조여 그랬는지 느슨하게 아무렇게나 걸치고 있는 갈색 넥타이, 파란색 보석을 박은 큼직한 반지며 금장시계, 궂은 것과는 상관없는 성장과정을 거친 사람 특유의 기룸한 흰 손,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고 있는 부족한 것 없는 젊은이의 모습이다. 명자언니의 동생이라서 단박 바뀐 그런 느낌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육화 되지 않으면 결코 가능하지 않을 기품 어린 면면이 기철의 전신에는 이미 넉넉하게 배어 있었다. 부모와 누나들께 싸여서 어리광이나 부리던, 반편이라고 놀림 받던 그 어리보기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변모였다.

“참 얘도, 저 변한 건 생각지도 않고 우리 기철이 변한 건 그렇게 놀랍냐? 자 우선 이거나 먹어라”

양지 저를 먹이자고 일부러 내온 듯한 갈비찜을 명자언니의 손에서 받아들고 술도 받아 마셨다. 괴로움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모면할 길이 있으면 모면하고 보류할 수 있으면 보류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이미 얼잔이나 취한 듯 간잔조롬한 명자언니의 눈길은 양지가 왜 왔을까라는 의문보다는 이 대견스럽고 예뻐 죽겠는 사람을 너에게 보여줄 수 있어 좋다는 듯이 기철의 잠든 얼굴 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쟤가 좀 있으면 의원님이 되신 단다. 너 믿어지니? 향우회 동창회 얼굴 내밀고 다니느라고 매일 저런다. 너 온다니까 기를 쓰고 버티더니 이젠 아주 골아 떨어졌어”

난방이 잘 된 실내인데도 불구하고 차렵이불을 가져다 기철을 덮어 주는 명자언니를 보자 깊이 모를 자격지심이 무럭 솟아올랐다. 칼끝처럼 따갑게 목덜미를 훑고 내려가는 양주. 목에 걸린 가시가 씻겨 내려갈까. 술을 즐기지도 않으면서 냉수를 마시듯이 양지는 계속 술을 마셨다. 아버지의 외도로 집안이 또 시끄럽다는 호남의 전갈을 받은 날이었다.



4막



지난날을 회상하다 집을 나 간 것 까지는 알겠는데 어디서 무슨 짓을 했고 얼마나 마시다 언제 돌아왔는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양지는 자신이 익숙하지 않은 어떤 현상에 지나치게 신경을 집중하고 경도되어 있다는 것을 어렴풋 깨달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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