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문 교육
천자문 교육
  • 경남일보
  • 승인 2015.12.0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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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경상대학교 도서관)
이정희
아동을 위한 한자교육 교재에 ‘천자문’이 있다. 양나라 무제가 왕자를 가르치기 위해 은철석에게 왕희지가 쓴 글자 1천자를 탁본하게 하여 주흥사에게 네 글자씩 250구로 엮게 한 책이다.

천자문은 3세기경 백제에 전래되어 아동교육 교재로 널리 각광받아 조선시대에 50회, 일제강점기에는 54회에 걸쳐 발행자만 달리하면서 지속적으로 간행, 보급되었다. 우리 역사상 가장 많이 간행된 책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을 살 수 없는 집에서는 책을 빌려 밤새 베껴 아이들을 교육하였고, 서당에서는 천자문을 외지 못하면 훈장의 회초리를 맞아야 했다.

그러나 천자문은 네 글자로 이루어진 고사성어와 같아 전문가의 설명이 없으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고, 글자 배열도 난이도에 따른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실생활에 잘 쓰이지 않는 난해한 한자도 많다.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천자문은 한문 중에서 ‘통감절요’와 더불어 가장 어려운 글”이라고 비판하였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경남 산청 선비들은 독창적인 천자문을 만들었다. 해기 김령은 단성농민항쟁을 배후에서 조종한 혐의로 전라도 임자도에 유배되었다. 그는 유배기간 중국뿐 아니라 조선 개국까지의 역사를 2천자로 엮은 ‘역대천자문’을 1886년에 만들었다.

혜산 이상규는 일제 초기 아동들에게 조선 멸망의 교훈을 교육하기 위해 동아시아 흥망의 역사를 일천자로 엮은 ‘역대천자문’을 1911년 단성 묵곡 학이재에서 간행하였다. 국가를 창업한 군주와 신하, 국가를 망하게 한 군주와 신하 등 180여 명을 소개하였다.

5자씩 200구의 시로 엮어 주흥사의 천자문과 내용 및 형식을 달리하였고, 한자에 음과 뜻 및 설명문을 달아 아동들이 혼자서도 학습할 수 있게 하였다. 우리 실정에 맞는 독창적인 천자문을 만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아동들에게 한자를 가르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한 나라가 어떻게 하여 융성하였고, 어떻게 하여 멸망하였는지 역사를 교육하려고 한 것이다.

천자문을 답습만 하고 있을 때 경남지역 선비들은 아동교육을 깊이 고민하였고,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한자 및 역사교재를 개발한 것이다.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삼아 비판과 반성이 있어야만 학문이 발전하는 것이다.
이정희 (경상대학교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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