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5)
  • 경남일보
  • 승인 2015.12.0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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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5)


“그 애가 다 자랐을 때를 생각해 줘야 되는 게 우리가 할 일 아니겠어? 그 애가 언제까지 어린애로만 있겠냐구.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자라서 골칫거리 사고뭉치나 돼봐. 나 어제 저녁 한숨도 못 잤어. 만에 하나 미적거리는 동안 엇갈려서 일이 뒤틀리고 기회를 놓치고 말면 평생 후회할 일 되고 말지도 모른다 싶으니까 결근이고 뭐고 이게 아니다 싶어 뛰어갔지. 하여튼 우리나라 사람들 반성 많이 해야 해. 모순투성이야. 동네 어귀에 수백 년 묵은 정기나무도 있고 해묵은 비각도 몇 군데 있어서 처음 기대는 여간 낙관적인 게 아녔다고. 우리나라 윤리가 인본사상 아니냐. 이런 유서 깊은 마을에 터 잡고 사는 사람이면 포대기 싸서 우리가 안기기 전에 어디서 나도 우리 핏줄이라며 예, 예 미안해하며 걷어 들이겠다 완전히 헛짚었던 거야”

하다말고 열없어졌는지 입맛을 쩝쩝 다시던 현태는 주머니를 더듬어 담뱃갑을 꺼냈다.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라이터를 켜는 동작 하나 하나가 차츰 우울한 동작으로 변해갔다. 그렇겠지. 양지는 속으로 그들의 행동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들 놈 나이도 아직 어리겠다 바쁘고 아쉬울 것 없다는 뜻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 그렇지만 내가 지금 누구 편을 들고 있는가. 양지는 가래가 걸린 듯 밭은 목젖을 침으로 적셨다.

‘가스나가 꼬리를 쳤제. 우리 창규 갸는 별명이 새각시랑께. 근본도 모리는 지집아가 들어 왔는디, 아무리 손이 귀한 집이고 내 자슥 아를 뱄다고는 해도 근본도 모리는 지집아로 원님 받들 듯이 첫판부터 기달랐다 우받들 사람이 어딨소. 아니할 말로 내가 좀 매 짜게 닦달했기로서니 온다간다 말도 없이 집을 나가는 계집이 세상 천지에 어딨다요. 당신네 집에서는 그리 갤칬능가 몰라도 업시오. 우리는 안 돼요. 아들이라꼬 씻고 벗고 하나 있는 거, 넘보기는 개떡제빈가 몰라도 우리는 용의 알보다 더 귀한 삼대독자 막내둥이요. 삼신제왕님 전에 백일기도 디리서 얻은 아들이라요. 딸 따듯이 키아 논 아들내미 하난 디 우째서 내가 욕심 안 부리겄소. 저거 아바이 심덕 보고 밥술이나 묵고 사는 우리 집 가세를 봐서 딸 줄라는 집이 쌔빌렀소. 이놈이 공부머리가 좀 없어서 핵교도 중도 제패하고 있능기 뵈기 싫어서 바람이나 쐬고 오니라 풀어놨더마 어디서 촌충이 뒤꽁지만한 그런 약하디 약한 가스나 하나로 데꼬 왔는디 내가 눈에 열불 안 나기 생깄소. 살이나 찌나, 키가 크기를 하나, 봉변 안당한기 천만다행이라 생각하고 퍼뜩 가소 고마. 그녀러 지집아 땜새 동네방네 호난 것만 생각하모 참말로 오장이 뒤비져서 샐인이라도 낼끼요’.

관계가 맺어진다는 것은 곧 미움이 생성되고 있다는 증거인가. 마을 사람들과 우스개를 하고 있을 때는 사람 좋아 보이던 시어미뻘의 아낙네가 막상 정남의 언니라고 신분을 밝히자 돌변하던 광경은 지금도 몸에 소름끼치는 현상이었다.

그 이전 어느 날 한 번 정남을 찾아가서 어른들 몰래 만났을 때 정남은 시아버지가 한약을 지어다줘서 먹는다는 얘기만 했다. 그때 양지는 정남의 깊은 심지가 얼마나 고통을 겪었을지 단박 알아채고 명쾌하게 야무진 결단을 보여주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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