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6)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6)
  • 경남일보
  • 승인 2015.12.0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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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4 (46)



언니 행복해 보일게. 그날도 정남은, 임신한 여자 특유의 마른 무꼬랑지처럼 야위고 비틀어진 얼굴에다 애잔한 웃음을 머금은 채 그렇게 말했다. 행복해 보일게, 라고 편지에 남겼던 제 말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그 애는 고통을 참고 또 참고 있었던 것이다.

찻잔 속에 담긴 차는 이미 밍근하게 식어가고 허심하게 눈 주고 있는 창밖의 가로에는 단풍 든 벚나무 잎들이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바람을 맞고 있었다.

그녀는 차분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역시 줄 곳 없는 시선을 허랑하게 풀고 담배 연기 속으로 잦아들어 있는 현태의 신경을 끌어당겼다. 하나마나한 질문이었다.

“뭐냐고 물어보지는 않았어?”

하도 건너 뛴 대화여서 얼른 감을 못 잡은 듯 양지를 빤히 바라보던 현태가 곧 짐작을 했는지 물었던 담배를 입술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아비란 작자가 슬쩍 묻긴했지”

“뭐라고 했어?”

“무슨 뜻이야?”

“아들이라고 하지”

“그래서 만약 데리고 가겠다고 나서면?”

“그럴 리 없어. 난 그런 사람을 알아. 전에 어떤 군인이 복무지에서 사귄 여자와 아이까지 낳았는데 종손 집 체통 좋아하는 본가에서는 그 아이를 거둬들이지 않았어. 그 후 세월이 흘러서 장가를 갔는데 공교롭게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거야. 종손 집 대가 끊기게 됐다고 그제서야 후회하며 아이를 찾아 나섰지만 때가 언젠데 버려진 애가 거기서 기다리고 있겠어. 가문이니 혈통이니 그런 걸 따졌던 어른들의 비인간적인 야비한 행동에 따라 그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지 한 번 생각해봐”

“덧없는 복수심은 버리고, 묻겠는데, 기대할 수는 없지만 결론은 확실히 해놓고 기다려 보자. 데릴러 오면 내주는 거지? 그게 순리잖아”

“아직 결정 못했어”

“언제까지”

“이제는 실수 같은 것도 하지 않고 후회하지도 않을 거야”

“하여튼 넌 참 알다가도 모르겠어”

“뭐가?”

“똑똑하고 맵고 당찬가하면 또 맹한 구석이 그믐밤 이상이고. 수찬이가 그러더라. 남편 얼 빼놓기 딱 맞는 여자라고”

“그래서 혼자 안사나”

“까분다. 잔소리 말고, 내가 좀 더 힘 써 볼 거니까 이 일 마무리 짓고 이 해 가기 전에 우리 일도 결말 짓자. 아버지랑 할머니까지 오시겠다는 걸 이 일 때문에 겨우 미루었건만”

양지는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잠겨있고 싶은 따뜻하고 다정한 음성이다. 그런 말을 만들어내는 그의 가슴은 더욱 넓고 아늑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코끝이 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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