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59)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59)
  • 경남일보
  • 승인 2016.01.0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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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59)

현태는 아예 대꾸를 하지 않고 김치 깍두기를 우적우적 씹기만 한다. 양지가 부리는 허세를 벌써 꿰뚫고 있음이다.

소주가 들어가자 끌로 파는 듯이 식도가 아렸다. 양지는 상을 찡그리며 나물 한 젓가락을 집어먹는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서 결국은 현태의 말대로 따르는 한이 있을지라도 지금은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을 전제로 자신의 결심에다 쐐기를 박는다. 그리고 이왕이면 정남이 아들을 낳아 줄 것을 기대했다. 그래야만 싱겁게 일방적으로 내침당하지 않고 설욕의 기회를 가져볼 수가 있을 것이다.

“또 그 소리라고 화낼지 모르지만 남의 장래가 걸린 일인데 양지 혼자 생각만으로 독단하면 안 돼. 아니 할 말로 정남이는 모르지만 어린애는 양지가 어떻게 할 수 없잖아. 자식이 용돈 때문에 부모를 죽이는 일이 생기게 된 세상이지만 그렇다고 다 그런 건 아니잖아. 인륜 도덕을 무시하면 결국 다 같은 족속 밖에 뭐가 되겠어”

“윤리 도덕이 아직 남아있다고 생각해? 그건 어디까지나 희망 사항일 뿐이지. 쟤가 저렇게 된 걸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한다면 현태 씨의 시대감각이 문제다”

상을 찡그려서 부인해 보이며 양지는 단숨에 꼴깍 소주를 들이켰다. 이 가슴 답답한 불특정 다수에 대한 피해의식을 상쇄할 수만 있다면….

속이 쓰리고 아렸다. 난도질당하는 듯 아픔이 극심한 것은 비단 술에 약한 위장 탓만은 아니다. 어젯저녁부터 양지의 주량으로는 엄청난 과음이었다. 게다가 거의 빈속이었다.

밑에 사람, 특히 현장 사람들에게 거리감을 없애는 일은 같이 술을 마시는 것 이상 없다. 우악스러운 남자들은 여자인 양지가 기를 쓰며 술자리에서 버텨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측은한 듯 그녀의 요구대로 작업량을 채워준다.

양지는 교묘하게 그들의 남성 심리를 이용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누가 누구를 이용하고 이용당하는지 아리송할 때가 없지 않았다.

아픈 마음을 쓸어 넘기기 위해 거퍼 잔을 비우자 현태가 병을 빼앗았다.

“놔. 언제는 나다워서 싫다하고 언제는 또 나답지 않아서 싫다하고, 내가 뭐 네 주머니에 든 손수건이가? 마음대로 이랬다저랬다 되반죽 쳐도 되게”

“야이 문디 가시나야. 니 참말로 와카노. 에나 한 번은 말할라 캤는데 요즘 확실히 달라졌어”

친근감있게 다가오려는 노력으로 양지의 고향말투를 흉내 내서 현태가 오빠처럼 나무랐다. 간간이 부리는 익살이었다.

“그래, 보긴 바로 봤는데 좀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봐줄 수는 없지? 이 이기주의 비겁자들”

“새벽 호랑이 너 심정은 이 선배가 잘 알지”

“새벽 호랑이? 내가 웬 새벽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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