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6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61)
  • 경남일보
  • 승인 2016.01.0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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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61)

“너는 그렇게 좋은 동네 출신이야. 그걸 잊으면 안 돼. 내가 왜 이런 상황에서 이런 장황한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 고집이 너무 세면 판단이 엇나가고 오류가 생긴다 이말이야. 빨간 불 번쩍, 번뻑하는데 저만 신호 무시하고 달리는 차 그게 온전하겠어?“

현태가 늘어놓는 해박한 고향 상식을 듣다보니 코너에 몰린 듯, 할 말이 궁해진 양지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밥 나오는데 어디가?“

양지는 화장실이라고 적힌 곳을 손가락질 했다. 돌아보자 현태와 시선이 마주쳤다. 둘은 풋 웃었다.

보호자인척 하는 박 현태는 전에도 몇 번 자신이 최 양지를 좋아하게 된 진짜 연유를 말했다.

”내 첫사랑 여인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 진주 사람이거든“

”그게 누군데?“

”우리 외숙모. 시누이한테 점수 잘 받는 올케가 쉽지 않은가 보던데, 그 분은 단연 우리 엄마의 첫 손가락이거든“

”그런 엉성한 이유가 어딨어“

”아 물론 첫눈에 반했다는건 아니고. 자주보고 지나는 동안 정이란 것이 생성되고 또 그것이 매력에 끌리면 연애, 뭐 사랑과도 연결이 되겠지? 좋은 환경에서 우수 농산물이 생산되는 게 우연 아니잖아“

”비유가 어찌 듣기 거북하다? 내가 무슨 생산품도 아니고“

”진주 혼이 배인 우량상품일지도, 그건 내 바램이지. 흐흐흐....“

만 좋은 환경에서 생산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습관도 환경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고”

최양지가 진주 출신이라서 호기심이 동했다는 현태의 말은 늘 들었지만 남성들의 쓰잘데없는 농담으로 흘려들었다. 현태의 분석대로 진주여자들의 특성은 무명베처럼 검소하고 덤덤한 대로 변함이 없다. 현태가 예를 든 대로 삼족에 이르는 많은 권솔을 위아래 구분해가며 이해심 깊게 품어주는 심지 깊은 외숙모를 비롯해, 억척으로 고난을 이겨 내고 며느리의 존경까지 받고 살았던 가문의 수호신격이던 진주 토박이 출신의 친할머니, 거기다 작년에 결혼한 이웃의 새댁까지.

이럴 때 양지는 고향 진주에 미안했다. 벗어나고 싶었고 잊어버리고 싶었던 그곳에 대한 현태의 호감도 돌연변이 상태의 삶을 살고 있는 그녀의 귀에는 성가신 추근거림으로 들릴 수 밖에 없었다.

현태의 접근은 근래 들어 ‘어머니가 양지를 한 번 만나 보잔다’ 는 데까지 발전했다.

좌변기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자 엉치가 무너진 듯이 아래로 잦아들었다. 하루 종일 서서 허둥거린 피로가 일시에 몰려들었다. 생각만큼 시원하게 소변도 나오지 않았고 볼일이 끝나고서도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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