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6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62)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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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62)

변기에다 한 쪽 발을 올려놓고 눈을 감고 무릎을 끌어안았다. 어디를 어떻게 휘돌다가 저 지경으로 나타났을까, 정남을 향한 원망 따위는 모두 지난 일이다. 장차 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의 일이 중요했다. 현태는 창규의 사람이 되었으며 그의 자식을 낳을 것이니 그 집에다 알려서 산모까지 인계해야한다지만 정신상태도 온전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될지 뚜렷한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쯤 아기는 낳았을까. 정말 어떻게 해야 바람직한 해결 방법이 될 것인가. 비참한 신세가 되어있는 정남의 심정을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기에 앞날에 대한 시름은 크고 무겁게 그녀를 압박했다.

정남이 창규의 집에 가있다는 걸 알게 된 양지가 그 곳 성산으로 갔지만 창규의 가족들이 방해했기 때문에 양지는 아직 창규 얼굴도 모른다. 정남에게 들은 바로 창규는 위로 누나가 넷이나 되는 막내였다. 공부가 하기 싫어 어영부영 떠돌다가 심심풀이 삼아 다니기 시작한 회사에서 정남과 사귀게 되었는데 세상살이라고는 세, 자도 모르는 철부지였다.

창규는 정남에게 아이를 지울 것을 종용했으나 사형선고를 받는 것만큼이나 크게 반발하는 정남과 갈팡질팡 하는 사이에 그의 부모들이 알게 되고 정남은 버리지도 내치지도 못할 어정쩡한 물건 취급을 당하며 창규의 집으로 옮겨갔던 것이다. 거센 노조에 휩쓸렸던 회사가 직장 폐쇄를 해버리자 더는 객지에서 뭉그적거릴 명분이 없기도 했다.

서릿발 같은 냉정한 시선들 밖에 정남을 기다리는 것은 없었다. 시어머니의 연락을 받고 모여든 시누이들은 교활하기조차 했다. 동생의 장래를 막고 있는 요물처럼 정남의 배부른 하체에 쏟아지는 비난은 숫제 동물 취급이었다.

참고 견디는 것은 이미 어머니의 피내림을 판박이한 정남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포기하면 무엇이 돌아올지를 정남은 너무도 잘 알았다. 행복해 보이겠다고 약속한 쾌남언니의 얼굴이 무섭게 그녀를 응시했던 것도 물론이다.

정남은 조신스럽고 묵묵히 시키는 대로 어른들의 명을 따랐다.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들일은 들일대로 잔약한 체구의 그녀가 능히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마치 못 견뎌서 도망가기를 바라는 술책인 듯 인정사정없이 혹독한 부림이었다. 위안이 있다면 이웃 아주머니들이 뉘 집 딸인지 안쓰러워하며 보내는 칭찬이었다.

‘어린 게 어쩜 저렇게 음전하고 속이 깊을까. 창규놈이 그리 껀들껀들해도 아가씨 보는 눈은 있었네.’

그렇지만 정남은 매일 창규의 부모에게 구박을 받았다. 밭 매는 일이며 어린 곡식을 돌보는 눈은 미숙하기 짝이 없어 조밭을 맬 때면 풀은 그냥 두고 어린 곡식을 죄 뽑아 놓고 등짝을 후려 맞는 일도 허다했다. 집안일이라고 하나 나을 게 없었다. 시어머니는 남자처럼 큰 몸집대로 목청도 크고 입심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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