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65)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65)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0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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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5 (65)

‘최 양지, 생식능력이나 확실한지 궁금하지 않아? 난 요즘 철 놓친 농부 마냥 ‘씨앗 오쟁이’ 걱정이 돼서 잠을 설친단 말이야.‘

언젠가 현태가 하던 진한 농담이 떠올라 양지는 못들은 척 밥그릇 긁어 먹는데 열심인 시늉만 했다.

옷깃을 여며도 찬바람이 밀려들고 가슴속에 구멍이 난 것처럼 춥고 쓸쓸한 가을 저녁이면 이성의 따뜻한 체온을 그려보지 않은 독신자가 있을 것인가. 속마음은 미워하지 않으면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별거 부부처럼 냉정을 가장하고 돌아설 때 현태가 치한으로 돌변해서 자신을 앗아갔으면 바랐던 적도 사실은 없지 않았다. 다음부터는 좀 더 다정하고 진지하게 대해야지 하는 생각은 늘 그녀를 배반하며 현태에게 촉을 세웠다.

병원으로 돌아오자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문주사가 골똘한 인상을 얼른 지우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떻게 됐어, 현태가 눈짓으로 묻자 얼른 심각함을 지운 문주사의 인상이 헤프고 싱겁게 풀어졌다.

“소주두리미 하나 탄생했네”

“소주두리미?”

못 알아들어서 반문한 것도 아닌데 문수찬은 싱글거리며 설명을 곁들였다.

“우리 고향에서는 딸 낳았다 소리를 그리 신호 안합니껴. 딸은 키워 봤자 사돈집 이바지로 소주 한 두리미 밖에 받는 게 없다는 뜻이랍니다”

“어, 우리는 파란색 옷을 샀는데”

들고 있던 옷꾸러미를 들어 보이며 현태가 웃는데 아까보다 더 심각해진 얼굴로 수찬이 덧붙였다.

“그런데 좀 심각한 일이 생겼다.”

양지도 현태도 우뚝 서며 수찬의 얼굴을 응시했다.

“우선 가서 봐”

첫아이를 낳으면 산모의 가족들은 사지가 온전한 지 손가락 발가락은 제대로 있는지부터 살핀다. 세상의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주무르고 가져도 될 손과 뜻대로 넓은 세상을 지쳐다녀도 지장없게 튼튼한 발들은 두 다리를 받치고 있는지. 어른들이 다 못한 한풀이의 인자를 너무도 당연하게 확인하는 가족들.

양지도 심각한 일이 생겼다는 수찬의 말을 따라 강보에 돌돌 말린 아이의 얼굴부터 살폈다. 이목구비는 다 갖추어져 있는데 다른 무엇이 심각한 상태인가. 다음은 손발이다. 인큐베이터로 옮겨지던 아이에게서 강보가 벗겨졌다.

“아!”

순간 양지는 비칠 중심을 잃었다.

흔하지 않은 배냇병신. 여자아이의 왼쪽 팔이 개구리 발처럼 보였다. 자라다 말았는지 마디 하나가 없는 듯이 짧았다.



끔찍하던 그 충격의 날도 벌써 몇 개월이나 후딱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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