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플러스 <135>합천 단지봉
명산플러스 <135>합천 단지봉
  • 최창민
  • 승인 2016.01.1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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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안식향 '만수동 10승지'를 찾아서
▲ 작은 가야산

조선의 민간 예언서 정감록(鄭鑑錄)비결에 ‘전국 10승지’에 관한 기록이 나온다. 난리를 피해 몸을 보전할 수 있는 천혜의 환경, 우리민족의 전통적 이상향 10곳을 말한다. 그 중 ‘가야산 남쪽 만수동’이 들어 있다. 만수동이 어디일까. 합천군 가야면 단지봉과 남산제일봉, 죽전·더내마을 일대 200리를 말한다.

마을 앞에는 한밭이라는 광활한 전답에, 물길이 흐르고, 뒤로는 단지봉이 병풍처럼 서 있다. 그야말로 이곳은 반풍수도 알만한 산자수명한 길지이다.

한때 더내마을이 화마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정면에 있는 비계산이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형상이었기 때문. 산을 옮길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사람들은 이를 방비하기 위해 마을에 연못을 파고 물길을 내어 흐르로록 했다. 그래서 내(川)를 더한다는 뜻의 ‘더(加)내(川)’가 됐다. 이후 이 마을은 큰 화를 입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10승지의 명성을 잇고 있다. 일제 강점기 때 행정구역명칭이 한자식 ‘가천’으로 바뀌었다.

이번 주 명산취재팀은 10승지 가야산 만수동 죽전·더내마을을 울처럼 에두르고 있는 합천 단지봉(해발 1029m)을 찾아간다. 가야산 남산제일봉과 어깨동무하며 만수평전을 내려다보고 있는 산줄기이다.

광주∼대구간고속도로(구 88고속도로)거창휴게소 부근에서 왼쪽으로 우람하게 보이는 산이 활화산 형상의 비계산이다. 이 산 뒤편 우두산∼가야산 남산제일봉(매화산)줄기 중간에 단지봉이 있다. 등산 기점은 합천군 가야면 죽전마을이다.

 
▲ 소바위등


▲등산로, 죽전마을→대밭골→만수굴→작은 가야산(1064m)→큰재, 왼쪽 바깥 초막골갈림길→단지봉(1029m)→큰재(식기재)→암릉길→죽전·더내마을 원점회귀. 휴식포함 5시간 30분 소요.

▲오전 10시, 등산 기점은 합천군 가야면의 죽전마을이다. 아흔 아홉골 풍광이 수려한 자연마을이자 사람 살만한 곳으로 알려진 정감록 비결 10승지 중 하나다. 고로쇠 산나물 무공해 청정 특산품이 생산되는 하늘 아래 첫 동네, 인심 좋고 평화로운 산촌이다.

죽전저수지 가장자리로 난 큰 도로를 따라 20여분 올라가면 대밭골에 닿는다. 대밭골 입구에 주차장과 정자나무가 서 있고 그 옆에 팔각정과 마을회관이 자리 잡고 있다. 10여호 남짓한 마을은 한적하기 그지없는데 그 각각의 집 시멘트블록 담장에 아이들이 즐겁게 뛰노는 생동감 넘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영희야 놀자, 철수야 놀자, 해선아 놀자” 이런 식인데 이곳에 해선이란 아이가 살았던 모양이다.

‘가야산영맥이 남쪽으로 뻗어 별유산 정기가 서린 아름다운 내 고향, 소박한 인정이 세세손손 계승될수 있도록 다짐하면서 조상님들이 잠드시고 자신이 성장한 이곳을 잊을 수 없어 내외 동향인의 뜻을 모아…,’ 2002년 세운 애향비가 눈길을 끈다.

대밭골을 관통해 오르면 멀리 눈높이에 불쑥 튀어 오른 수리등과 소바위등, 선 굵은 마루금이 시선을 끈다. 수리류가 서식하는 바위를 의미한다.

자연마을이 끝나는 지점 언덕에 서 있는 이정표는 왼쪽 마장재→우두산, 오른쪽에 가야산으로 표기돼 있다.

오른쪽 계곡 너머에 새롭게 지은 전원주택은 도회지 사람들이 귀촌하거나 휴양, 힐링을 목적으로 지은 집들이다.

 
▲ 죽전마을 대밭골


등산로는 비교적 선명하나 일단 산으로 들어가면 이렇다 할 이정표가 없다. 계곡을 건너면서 오르기를 몇차례 1시간만인 오전 11시께, 마지막 물길을 넘어선다.

전날 내린 미끄러운 눈 때문에 일행이 물에 빠지고 정강이 부상까지 당해 눈길 겨울산행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했다.

계곡을 벗어나면 곧바로 갈림길. 왼쪽은 산을 약간 에둘러서 주능선 작은 가야산으로 가는 길이며, 오른쪽은 200m지점에 만수동굴→암릉을 거쳐 주능선에 닿는 등산로이다. 실제는 왼쪽길이 정상적인 길이지만 취재팀은 만수동굴쪽을 택했다. 만수동굴에는 박쥐가 서식한다. 등산인들도 별로 찾지 않는 지역으로 마을 사람들에게만 알려져 있다.

만수굴을 지나면 거대한 암릉지대. 등산로는 사라지고 로프도 없을 뿐 아니라 높은 경사도에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저 한걸음 한걸음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스럽게 오르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옹골찬 암릉을 타고 가다보면 주변 산군에도 암릉투성이다. 타고 걷는 길은 수리등, 주변 산군은 소바위등이다.

바위가 앞을 막으면 우회하고, 흙무더기에 밀린 길에선 네발로 기어 올라가야 하는 길없는 곳의 산행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바위에는 수 십년동안 제멋대로 자란 석이버섯이 지천이다.

어슴프레 한 등산로와 위험한 수리등, 소바위등을 헤맨 취재팀은 출발 2시간 만에 능선에 올라섰다. 이 지역도 거친 잔가지가 길을 가로막는 구간. 가끔 보이는 빛바랜 산행리본은 수 년동안 인적이 없었음을 보여준다.

능선에서 거칠고 힘든 주행이 얼마나 계속됐을까. 20여분 만에 드디어 주능선에 닿는다. 이때부터는 편안한 등산로가 나와 안도감이 든다.

왼쪽 멀리 비계산과, 가깝게 소머리처럼 솟아오른 우두산(별유산)이 선명하게 보인다. 비계산은 닭이 날개를 펴고 날아가는 형상을 의미하고, 우두산은 일본 건국신화의 무대 고천원과 관련 있는 전설의 산이다.

진행해야 할 오른쪽은 작은가야산과 단지봉, 삐죽삐죽 서릿발처럼 선 남산제일봉이 이어진다. 그 너머에 해인사와 가야산이다.

출발 3시간 만에 만나는 작은가야산은 거대한 부처상 5∼6개를 연이어 세운 듯한 모습. 남산제일봉이나 가야산 일부를 옮겨놓은 것 같다하며 그렇게 부른다. 좀 부풀려서 신선계라 할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

하지만 이 일대 등산로도 흔한 로프와 계단하나 없는 위험한 지역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바람 속을 휘청거리며 걷다가 안부를 지나 내려서면 산속에 갑자기 전봇대가 나온다. 식기재다. 합천 가야면 치인리 마장동과 만수동 죽전을 잇는 큰재이다. 한때 마장동 아이들 20여명은 해인사 주변 해인초등학교까지 2시간동안 걸어 다녔다. 지금은 2명의 아이들이 예산을 지원받아 택시를 타고 등·하교한다.

 
▲ 작은 가야산의 위용. 멀리 불쑥 솟아오른 우두산은 일본 고대신화의 무대가 되는 고천원이다.


진양강씨 무덤 옆으로 30여분 경사진 등산로를 따르면 단지봉이다. 사실 인근 거창에는 단지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있다. 경북 김천시 증산면의 경계에 있는 1335m 높이의 단지봉(丹芝峯)으로 내촌마을 혹은 거창수양관인 베데스타 기도원이 산행 기점이 된다. 합천 단지봉과 연접한데다 둘다 1000m가 넘어 서로 헷갈린다.

오후 3시께 단지봉 정상에 닿는다. 맞은편 비계산과 만수동 평전이 내려다보인다. 만수동 10승지는 평화로운 삶을 갈구하는 인간본성에서 비롯된 인간이 만들어 낸 이상향이다. 신선계라 할 만큼 경치가 빼어난 곳을 말하지만 그러나 실제는 그런 곳이 없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저 난리와 병마가 없는 곳에서 노동의 대가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그런 곳을 의미한다 할 것이다. 죽전·더내·단지봉 가야산 남산제일봉 일대는 그런 곳 일뿐 결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백은 노래했다. ‘그대 왜 산 속에 사느냐고 묻지만, 난 웃을 뿐 대답하지 않아도 마음은 한가로워, 복사꽃 뜬 냇물 저쪽에 아득히 흘러가나니, 이곳이 도원경이라고…,’

하산은 단지봉에서 남산제일봉방향으로 암릉을 타고가다 오른쪽 죽전마을로 내려서는 길을 택했다. 임재후 더내이장은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마을을 관통해 물길을 낸 인공천, 그래서 더내가 된 사연, 만수동 10승지에 관한 얘기를 듣고 자랐다”며 “지금도 큰 화가 미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곳이다”고 했다.

최창민기자 cchangmin@gnnews.co.kr



대밭골 마을의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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