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67)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67)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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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67)

최 양지, 우리는 동지다. 힘을 합해서, 여자라고 우리를 얕보고 호락호락하게 대하는 놈들을 콧대가 납작하게 짓밟아 주는 거다. 그 신선한 의기투합, 일치감의 순간을 어떻게 잊을 것인가. 강 영수 사장과 최 양지는 ‘동성연애’ 관계라는 소문까지도 확장되는 사세와 버금한 밀약과 같아 은근히 즐겨 왔다. 그러나····

양지는 고개를 젓는다. 내가 먼저 너를 제외시켜야해, 버림받지 않을 거야. 양지의 망막 속에 백지 한 장이 펼쳐진다. 떨리는 손길이 ‘사직서’라고 그리다 말고 멈춘다. 사위스러운 억측과 경박한 판단은 아닐까. 다시금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출장을 갔다온 사장실로 불려 들어갔을 때의 일을 떠올려 본다.

“손 위 사람이 옷 한 벌 사준다는 게 그리 큰 죄는 아닐 텐데? 최 실장도 큰 그릇은 못돼. 다시 봐야겠어”

전 같지 않게 서먹해 보이는 인상 뒤에 터져 나온 사장의 일침이었다. 녹녹잖은 부하의 행신을 꽁하게 여기고 있었음이었다.

양지는 턱을 낮추고 순리적으로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너무 아전인수 격인 결론이며 날카로운 말꼬리가 불쾌하게 오장을 감고 돌았다. 무단결근은 전적으로 복잡해진 집안 일 때문이었지 상한 자존심 따위 어린애 같은 치기를 보인 것은 아니다. 사장의 힐책도 책임 부서의 직원을 챙기는 당연한 노릇하고는 이미 다른 이유가 있다. 양지는 얼른 얼굴색을 고쳤다. 예견했던바 아닌가. 서툴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사장의 말대로 큰 그릇이 못되는 탓 밖에 다름 아니다. 또 있다. ‘손 위 사람의 호의’를 창피스럽게 받아들인 것은 단순히 ‘야윈 개’여서일 뿐인 게 된다. 양지는 얼른 머리를 굴렸다.

“무단결근에 대해서는 앞으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밝힐 수 없는 이유가 명백히 있어서였구요. 싸롱에서 있었던 일은 전적으로 사장님의 오햅니다. (양지는 얼굴에다 딱분처럼 얇게 웃음을 바르기 시작했다) 저는 사장님이 옷을 사 주신다 길래 이왕 사주실 바에는 앞으로 겨울 추위도 닥치고 하니 모피 코트 한 벌은 사주시나 기대했는데 유감스럽게도 그런 게 안 보이더라구요. 참 사장님도, 기회를 미룬 것 눈치 못 채셨어요?”

말은 잘 둘러댄다, 쯧쯧…. 사장은 못 갋겠다는 듯 눈을 흘기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사장 역시 사장다운 면은 있다. 표나게 야젓잖은 얼굴로 바꾸어서 말을 이었다.

“무슨 뜻인지 말 돌린다고 못 알아듣지는 않아. 싫겠지만 한 소리하겠는데 최 실장도 이제 인생관을 좀 바꿀 필요가 있어. 차고 있는 물건이 남자로 바뀌지 않는 이상 여자의 운명은 죽을 때까지 벗어 날 수 없어. 가만히 보면 최 실장도 나하고 성질이 비슷해. 아, 말이야 바른 말이지 여자가 뭐야. 부드럽고 따뜻하고 차지고 녹녹하고 그게 매력 아니야. 그런데 우린 틀렸어”

강변이 되면 침이 튄다. 그녀의 특징이다. 목 부근의 피부가 벌겋게 충혈 되며 힘줄이 불끈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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