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68)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68)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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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68)

아침부터 그럴 필요 없는 일인데도, 저의를 포장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자신을 조금씩 끼워 넣지만 사실은 양지의 결점을 꼬집어서 지적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언젠가 회식이 끝나고 얼큰히 취한 김에 둘만 남은 자리에서도 사장은 그랬다 .

“최 실장도 성격 바꿔야 돼. 난 지금 너무 너무 후회하고 있어. 아, 바른 말해서 최 실장한테 재력 있고 유능한 어떤 남자가 죽네 사네 반하기만 해봐. 인생관 싹 뜯어고치는 거지 이렇게 구질구질 기름밥 먹고 살 필요 뭐 있어. 양지, 우리 한번 실컷 울자. 답답한 이 가슴이 툭 트이게 말이야. 난 너무 억울하다. 앗겨버린 여자로서의 인생이 너무 아깝다”

사장은 정말 울음을 울기 시작했다. 장난처럼 시작 된 흐느낌은 조금씩 깊어져 가슴에 쌓인 통한까지 건드렸는지 아예 통곡을 터뜨려버렸다. 사장님하고 저하고는 달라요. 경우가 달라요. 저는 아직 사장님처럼 목 놓아 울 수가 없어요. 양지는 그냥 장승처럼 서 있었다.

사장의 말인 즉, 너는 아직 그 정도 수준밖에 안 된다는 경멸이었다. 비서실의 미스 김도 이러이러한 옷을 골라 갔다는 종업윈의 말이 귀에 걸린 채 잊히지 않았다. 그래서 뭐하는 건데요, 라고 추궁해 보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아무래도 그들처럼 될 수 없다는 자인이 들면 근원 모를 방향에서 찬바람이 몰려 와 가슴을 쓸고 지나갔다. 그럴 때면 마치 어두워지는 길모퉁이에 홀로 서있는 어린 고아처럼 한기가 들고 쓸쓸해 졌다.

내가 사장의 성취를 부러워하는가. 질투를 하는가. 사장의 언동에서 사사건건 가시를 느끼는 자신의 경도 된 의식에도 짜증이 났다. 너의 존재가 고작 그 정도였니. 시야를 넓혀야 한다. 자책해 놓고 자위하면서 양지는 또 나목처럼 외로워졌다.

‘썩어도 준치’라는 별명의 까만색 승용차 한 대가 수위실 앞으로 미끄러져 오는 게 보였다. 수위실 부영감이 뛰어나가 허리를 굽실하더니 건물의 현관 쪽을 돌아보고 얼른 오라는 손짓을 한다. 백을 어깨에 걸치며 강 사장이 뛰어 나간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펑퍼짐한 엉덩이에 머리가 달랑 얹힌 듯 한 우스꽝스런 모습이다. 사장이 타자 차는 뒷걸음쳐 돌더니 꽁무니 빼듯 날렵하게 사라졌다. 사장의 행동은 마치 걱정 없는 사모님이 남편 회사에 와서 용돈을 타 가지고 계모임이라도 나가는 듯 가볍다. 근로직 사무직을 합쳐 60명이 넘는 인원을 거느린 기업체의 사장답지를 않다. 최 실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사장은 말한다. 양지도 말은 이제 그러시라고 찬성을 했다. 동창회 아니면 수영, 골프, 그도 아니면 계곡 어디에 은밀히 숨어있는 별미 요리를 즐기러 다니는 것도 안다. 사장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해보는 기분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런데 사장은 느닷없이 그녀에게 옷을 사주려 했고 양지는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 손 위 사람이 부하에게 옷을 사준다, 명분은 정겹고 호의적인 데도 사장의 속내에는 배반의 낌새가 깊이 감추어져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요즘 왜 그러세요 실장님, 전화 받으라고 몇 번이나 불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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