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0)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0)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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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0)

“눈치가 저울질을 하는 거야. 내가 막 화가 나는 거 있지. 고물점 비슷한 철물장사로 시작한 거 누가 모르나. 자기가 언제부터 상류사회 귀족층이라고. 개구리가 올챙잇적 잊어먹어도 유만부동이지. 몸뻬 입고 쓰리빠 찔찔 끌고 양지한테 같이 일하자고 다니던 일 내가 증인 아냐. 형제처럼 동지가 되어서 한 번 일어서 보자고 빌듯이 한 사람이 누군데-“

숨이 찬 듯 잠시 추 씨의 말이 중단되었다.

”그 일이라면 ……“

양지는 느긋한 음성으로 추 씨의 흥분된 들뜬 음성을 눌렀다. 산부인과에서 정남이가 사라진 날, 그래서 더욱 생생하게 기억되는 미스 김과의 식사 자리. 재래시장 먹자골목에 있는 순대국밥 집에서였다.

점심은 미스 김이 먼저 제의를 했다.

전에도 종종 추 여사로부터 들은 소리가 있기 때문에 미스 김의 식사 제의를 받는 순간 감이 척 와 닿았다. 양지는 서슴지 않고 식사 약속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이 먼저 시장 골목의 순댓국밥집으로 인도를 했다. 부언할 필요 없이 자신이 가장 자신다울 수 있을 만한 장소를 보여줄 셈이었다. 고급 레스토랑의 이름을 들먹이던 미스 김의 입이 묘하게 일그러졌지만 양지는 모르는 척 일방적으로 밀고 나갔다.

기름때로 절은 탁자 위에 훔친 지 얼마 안 되는 물행주 자국이 상기도 번질거리는 순댓국밥집 탁자를 사이에 두고 둘이 마주 앉았다. 습관 되지 않은 낯선 분위기에 좌불안석인 미스 김은 사람이 들어 올 때마다 자리를 고쳐 앉고 주방 켠에서 스르르 국냄새 푸진 김이 흘러 올 때도 호흡을 어쩔 줄 몰라하며 연신 눈살을 찌푸렸다. 식사를 하러 들어오던 사람들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손님인 두 아가씨에게 한 번씩 눈길이 머물다 돌아갔다.

”우리 오늘은 전내기로 주쇼“

자리에 앉은 남자들이 큰소리로 주문을 하자 미스 김이 눈으로 물었다. 전내기가 뭐죠? 양지는 입귀를 길게 늘이며 짧게 답했다.

”진국을 말하는 건데, 곰국을 끓여본 적 없으면 모를 수도 있죠“

양지는 더 천연스러운 동작으로 주전자에 든 물을 부어 미스 김 앞으로 놓아주고 수저통에서 꺼낸 수저도 앞앞으로 챙겨 놓았다.

”이런 데 처음이죠? 먹어보면 여간 구수하고 깊은 맛이 아녜요. 세상의 깊이를 알려면 시장을 헤쳐 다녀 보라는 말도 있잖아요. 비록 간접체험이기는 해도 삶의 희로애락이 진솔하게 농축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 나온 말이겠죠. 저 할머닌 저 투박한 국솥과 친해서 아들 딸 사 남매를 대학까지 가르쳤다고 자부심이 아주 대단해요. 저기 손님 머리 위로 기둥 저쪽에 있는 사진 보이죠? 아, 여기서는 자세히 안보이지만, 할머니의 장남이 미국에서 박사 학위 받을 때 찍은 거래요. 미국 대통령 케네디의 아버지가 하수도 공사장의 인부가 되어도 세계 제일만 되라고 아들을 가르쳤다지만, 몰라서 그렇지 그에 못지않은 부모들 우리나라에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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