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2)
  • 경남일보
  • 승인 2016.01.1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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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6 (72)

예사로운 듯이 뱉는 말속에 얼마나 크고 깊은 뜻이 내재해 있는지. 양지는 앞에 놓인 부추 겉절이를 집어 국밥 위에다 듬뿍 얹었다.

추 여사의 진심 어린 바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양지의 내심에는 튼튼한 말뚝이 있었다. 병훈 과는 사장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았던 그의 귀국 날, 그리고 그가 양지가 일으켜 놓은 회사에 대한 칭찬을 했을 때 이미 교감을 주고받았다. 진실한 말은 굳이 입으로 뇌이지 않아도 통하는 법이다.

현태가 있기 때문에 다만 남자다운 것으로 저울질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이라도 양지의 결정만 내려진다면 추 여사는 서둘러서 양지와 병훈을 묶을 것이다. 천생 예술가일 수밖에 없는 약간은 방종한 성격과 천진한 어투, 구김살 없어 보이는 여리디 여린 눈빛. 그와 결혼을 하면 그의 뒷수발로 평생의 낙을 삼을 수밖에 없이 될 것은 뻔했다. 그러나 그가 물려받을 재력은 입맛 당기는 전리품이었다.

하지만 왠지 병훈에게는 낚이고 싶지 않았다. 의동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남편을 삼는 일이었다. 그러나 운명적인 필연이 묶어 준다면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순간 양지는 고개를 저었다. 재산이란, 더구나 사업가의 마천루는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신기루가 될 수도 있다. 강 사장을 만난 이유도 그런 결과였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결국 그 지긋지긋한 엄마의 전철을 따를 수밖에 없다. 양지는 얼른 우먼파워의 간사 자격으로 핏대 세웠던 자신의 신분을 떠올렸다. 이런 양지의 표정을 살피고 있던 미스 김이 결정적인 물음을 던졌다.

“그럼 제가 앞으로 병훈 씨랑 결혼을 해도 최 실장님은 상관 않으시겠죠?”

“왜요, 아주 없기는. 축의금 내느라고 지갑을 열어야하는데”

양지는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그리곤 여유 있는 음성으로 덧붙였다. 자신의 조언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힘이 닿는 대로 도울 수 있으면 얼마든지 도우겠다고. 사실 정남의 일로 꽉 차 있는 양지의 머릿속에 미스 김 류의 고민은 사치스럽고 치기스러울 따름이었다.

설령 내일쯤 이 병훈과 미스 김의 결혼 청첩장을 받아들고 가슴이 찢어지는 상실감으로 괴로워할망정 지금의 그녀로서는 집안일의 선후에 매달려 다른 쪽으로 머리 돌릴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추 여사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내숭떨며 굳이 발뺌을 할 것도 없이 곁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도 손해 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자리에서 미스 김과 나누었던 대화는 시치미 떼고 묻어두면 그만일 터.

“병훈씨 지금 집에 있어요?”

“병훈이? 그게 어디 집에 붙어있나. 설악산인가 어디 친구 별장에서 전화만 왔어. 미스 김이랑 하양이랑 고것들한테도 책잡힐 일 있을라 조심하라구. 하양 고게 쥐방울만한 게 미스 김 끄나풀 노릇하고 있는 거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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