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1)
  • 경남일보
  • 승인 2016.03.0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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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1)



차가 병원으로 들어가자 응급실 앞에 나와 시계를 보고 있던 현태가 애석한 눈길을 보내며 양지가 내릴 문을 먼저 열어주었다.

“정남이, 어때?”

어깨를 떠밀러 가면서 양지가 물었으나 현태는 대답하지 않고 걸어가더니 비어있는 의자에다 누르듯 그녀를 앉혔다.

“뭐 마실 거야?”

“아무 것도 필요 없어. 정남이는?”

“글쎄 앉아 보라니까. 경고하는데 넌 앞으로 그 고집 버리잖으면 그 고집으로 망하고 말거야. 내가 뭐랬어. 어머니 부르자고 했어 안했어?”

어깨를 누르는 현태의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강한 힘은 정신적인 여유를 주기 위한 시간 끌기 작전임이 분명했다. 몸을 비틀며 양지는 저항했다. 그때, 차를 파킹시키고 수찬이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야?”

수찬도 똑같은 질문을 했다. 대답대신 수런거리며 활짝 열리는 응급실문 쪽으로 현태의 눈길이 쏠렸다. 피와 약물로 얼룩진 담요로 전면이 덮인 침상 하나를 두 남자 오다리가 밀고 나왔다. 아연 경직되는 현태의 표정을 읽는 순간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이 양지는 바퀴에 실려 굴러가는 병상을 따라 뛰어갔다.

“또 그럴 줄 알았으면 손발이라도 묶어 놓았을 걸, 누가 알았나요. 멀쩡하게 잘 있는걸 보고 잠시 마실 물을 가져오니까 글쎄, 미안해요. 이나 저나 내 잘못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곁에 누가 있었대도 소용없었을 거유. 어찌나 빠른지, 사람이 뛰어드는 걸 보면서도 차가 미처 설 겨를이 없었다니까요”

또 그 소리. 언제 왔는지, 면목이 없다는 표정과 뒤섞인 책임일탈 의지로 전혀 귀에 들지도 않는 사건의 전말을 간병인은 늘어놓고 있었다. ‘영안실’이라는 빨간 글자가 양지의 눈 속으로 확 빨려 들었다.



영안실 한구석의 의자에 양지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풍골 좋은 망인의 영정을 모신 옆 빈소에는 낭랑한 독경을 배음으로 조문객이 끊이지 않았다. 누릴 것 누리고 천수를 다했으며 보람 있는 일생을 보낸 죽음은 애도와 칭송을 다해올리는 잔치자리처럼 풍성해 보인다. 그에 비하면 정남의 빈소는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 흔한 영정 사진 한 장도 없이 장의사에서 마련한 지방만이 정남의 영혼이 머물고 있는 상청임을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다. 수찬이 가져다 놓은 하얀 국화 한 묶음이 기진한 듯 가물거리는 촛불 아래서 아까부터 양지의 신경을 긁었다.

장례는 죽은 사람의 생전업적을 정리하고 기리는 자리다. 양지의 머릿속에는 요즘 같으면 영화나 연속극에서나 볼 수 있는 옛날 장면이 떠올랐다.

외가 쪽의 어떤 수염 긴 할아버지 장례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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