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2)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2)
  • 경남일보
  • 승인 2016.03.01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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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김지원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02)

정자관을 높이 쓴 그 할아버지는 근엄한 표정에 비하면 무척 자상한 어른이셨던 모양, 외손인 양지가 가면 귀한 집 외손이 왔다면서 앞에 앉혀놓고 벽장 속에 감춰두었던 갱엿과 유밀과를 소반에 받쳐 주었다. 음식만 아니라 교훈적인 좋은 말도 곁들여 주는 것을 나이 든 어른의 의무처럼 여겼기 때문에 책상다리해서 앉은 다리에 쥐가 나도록 앉아서 들어야했던 말씀은 아이들 모두 고역으로 여겼던 일로 유명했다.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는 ‘암실기심이면 신목이 여전’이라는 말은 실생활에서 문득문득 떠올라 그녀의 마음가짐을 정돈하게 만들었다. 그 할아버지의 장례는 그 분의 공적이나 학덕을 칭송하는 조기나 만장으로 무려 3킬로에 이르는 시골길을 꽉 메웠다. 초빈을 갖추어 치르는 5일장은 또 어떠했던가.

마을의 상포계가 소집되어 각각의 소임대로 남자들은 걸음 빠른 사람을 선별하여 우선 일가친척 집으로 먼저 부고를 전달하러 보내고 장례에 쓸 먹새와 장의용품을 사오는 등으로 나뉘어서 협조 인력이 꾸려진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장거리로 발을 동동 구르는 와중에도 여자들은 사잣밥을 지어내고 조문객 받을 음식들을 만들어 낸다. 기름기가 퍼지는 가방 옆을 기웃거리다 어미가 치마말기로 감춰 내온 부침개 하나라도 얻어먹은 아이들의 즐거움은 그야말로 극치에 이른다.

양지의 엄마는 대방 옆에 달린 작은 방에서 수의를 짓고 상주들의 굴건제복을 짓는 일에 참여했고 넓은 사랑마당에서는 이웃동네의 장의장인까지 초빙해다 상여 꾸밀 종이꽃을 화사하게 만들었다. 색색의 종이를 오리고 접어서 만들어내는 그 꽃송이들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요술처럼 야릇한 슬픔과 황홀함으로 마른 침을 삼키게 했다. 항렬이나 촌수를 따져서 몇 년 복이냐, 몇 개월 복을 입을 백관의 차림은 어떠해야 할 것이며 바깥 상주가 짚을 지팡이는 대나무로 만들고 안 상주들의 지팡이는 버드나무로 해야된다는 등의 의견차이로 옥신각신 다투기도 했다.

닷새 내내 가근방 사람들이 드나들며 흥청거려서 장마당처럼 버글거리던 분위기는 그야말로 잔치였다. 꽥 꽥 죽어나가는 돼지나 쇠고기가 수육이나 장국으로 요리되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배불려 먹는 배상은 단체나 독상 관계없이 푸지고 걸판졌다. 소문을 듣고 몰려 온 거지들이 바깥마당에서 벌이는 곡예나 각종 놀이판은 또 그 나름대로 놀고먹어도 나무라는 이 없는 죽음잔치의 색다른 장면 연출이었다.

게다가 장례전날 밤 상가의 안마당에서 예행연습으로 행해지던 대어름 장면은 얼마나 가슴 떨리는 슬픔과 황홀함이 버무려진 비장의 극치였던가. 선소리 앞소리를 따라 상여꾼들이 입을 모아 부르는 상여가에 따라 어버이를 마지막으로 이별하는 상주들의 서러움에 찬 호곡소리는 또 얼마나 애절하고 구슬픈 화음이었나. 그날 양지의 아버지도 집안의 사위 자격으로 상여에 올라 황천길 잘 가시라는 뜻의 춤을 추며 길게 늘여 매어진 새끼줄 마디 한 곳에 망자의 노잣돈으로 몇 장의 지전을 끼워놓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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