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12)
그러나 왠지 허무한 기대가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문명국 중에서도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극히 저조하다는 이 나라. 상대 남자도 경쟁자이며 동료 여직원도 경쟁자이며 자기 자신마저 경쟁자로 진정한 자아실현도 못 세우고 있는 이 안타까운 심정.
양지는 현태를 만나기 이전에 자신과 뜻이 상반된 경우에 내리게 될 어떤 마음의 결딴을 이미 품고 있었다.
“웬일이야?”
먼저 와있는 양지가 신기한 듯 웃으며 다가 온 현태가 앞자리에 앉았다. 종업원을 불러서 차 주문을 하고 양지는 자리를 고쳐 앉았다. 주위를 의식적으로 둘러보았다. 가을을 더욱 가을스럽게 해주는 애절한 가락의 단소 연주가 낮게 흐를 뿐 비교적 손님도 적어 심중에 있는 말을 끌어내기에는 무리 없는 분위기였다.
“마음 정했다고 고향부모님께 연락은 했어?”
“아니, 아직”
“그런데 왜 그렇게 굳어있어? 너답지 않게. 남 안하는 결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유난 떨 것 없으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마. 어른들을 여기까지 오시게 할 것도 없이 상견례는 진주에서 하도록 하지 뭐”
“그건 나중 일이고…, 먼저 그쪽과 상의할 게 있어”
“상의? 그래 해봐”
“… . 우리 아이를 좀 많이 키우면 어때?”
뜸을 들이는 양지의 깊은 의중을 알지 못한 현태는 뜻밖으로 나온 양지의 앞지른 제안에 서슴없이 가벼운 응수를 했다.
“그래. 나도 산아제한 같은 건 신경 안 써. 대체 몇 명이나 낳겠다고 벌써부터 출산계획인거야?”
기분 좋게 반응하는 현태의 열린 마음이 무거운 마음을 조금 가볍게 해주기는 해도 양지는 그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볼 자신이 없어 날라져 온 찻잔을 얼굴 가까이로 대고 차향을 음미하는 듯이 뜸을 들였다. 절대 신중해야 될 일이지 가볍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왕 꺼낸 말, 또 언젠가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될 일이었다. 그녀는 결혼 상대자라는 구태의연하고 가부장적인 무거운 이미지의 선입관을 버리고 동지처럼 친한 남자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놓듯 가벼운 마음을 만들었다.
“나 사실은 현태 씨의 허심탄회한 말을 듣고 싶어”
“뭘 그렇게 심각한 게 있냐니까?”
“저 애 말이야, 정남이…”
“아, 그 일. 그거라면 걱정 마. 그렇잖아도 이제는 네 일 내 일 가릴 입장도 아니고. 그래서 일간 한 번 더 창규네를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어”
“창규네? 그럼 꼭 거기다 넘겨주려고?”
“그럼 어떡해. 남의 나라에 입양보내는 건 너도 나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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