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8 (113)
“건 말도 안 돼. 차라리 생판 모르는 양부모가 낫지 그 애의 전정을 생각해봐. 그 애한테 주어질 겁나는 눈길과 성장에 전혀 도움 안 되는 비난에 찬 언행들, 소름이 끼쳐. 더구나 정상도 아닌데. 그 집 얘기는 입 밖에도 내지마”
“외국도 안 된다, 본집도 안 된다, 그럼 대체 어쩌자는 건데?”
“내 말뜻은…, 현태 씨 말대로 제한하지 않고 낳을 우리 아이들 속에 그 애도 끼워주면 안될까…”
왜 이렇게 벌써부터 주눅이 드는 건가. 양지는 졸아드는 목소리를 진정하며 눈빛만은 또렷하게 현태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무슨 내용인지 얼른 감잡히지 않는 표정이던 현태의 얼굴에 서서히 당혹스러운 빛이 어리기 시작했다.
“요컨대, 걔를 데리고 그럼 양지가 우리 집으로 시집을 오겠다는 말…아냐?”
여자는 혼전에 낳은 남자의 아이를 받아키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여자가 낳은 아이는 절대 안 되는 것이 이 땅의 여자들이 아직 확보하지 못한 위치이다. 더구나 수연이 누구의 아이인지 뻔히 알면서 선뜻 용납 않는 현태. 역시 이 땅의 다른 남자들과 특별할 것 없는 단순하고 이기적인 사내.
사실 이런 일은 두 사람의 결혼에 직접적인 연관은 되지 않는 꼬투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양지는 이미 만약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크나큰 결단을 해두고 있었으므로 크게 실망할 것도 없었다. 세상을 품을 듯이 통 큰 남자인척 하는 현태의 품성이면 별스런 어려움 없이 수용되지 않을까 싶었던 기대가 흩어지는 섭섭함만 감수하면 그만이었다.
양지의 결심을 눈치 못 챈 현태는 쐐기를 박듯 한 술 더 떴다.
“야, 어쩜 그렇게 엉뚱한 생각을 했냐?”
“그게 뭐가 그렇게 엉뚱해?”
양지는 목을 메우고 넘어오는 욕지기를 꿀꺽 삼켰다. 그도 역시 가부장에 찌든 남자인 거였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엊그제 신문에서도 보았어. 자기 아이를 넷이나 키우는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 고아들을 다섯이나 입양해서 양육하는 거야. 더구나 그 애들은 지체부자유자들이거나 저능아들이어서 그 애들을 돌보기 위해 그 댁의 안주인은 다니던 직장도 그만 두고 말이야.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스러운 국제적 호칭까지 들먹일 것도 없다. 사랑하는 사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아량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