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1)
[박주원 장편소설] 갈밭을 헤맨 고양이들 10 (151)
  • 경남일보
  • 승인 2016.05.1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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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언니 성남은 이미 아버지의 이중적인 심리를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그 후에도 열심히 새마을 사업장에 나갔다. 그니가 받아온 옥수수나 밀가루는 다각다각 바닥 긁히는 뒤주를 채웠고 끼니가 되어 가족들의 주린 배를 불려주었다. 즐거운 웃음과 화목까지 선사했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들일이라야 품앗이가 고작인 농삿일에나 동원되었던 여자들도 당당하게 일당을 받는데 은근한 자부심을 가졌다. 열심히 모은 곡식이 훌륭한 가용돈 역할을 했음이다.

남편에게 가용돈을 타 쓰던 아낙들도 자기가 번 돈이니 자기 마음대로 쓰겠다는 뱃장으로 예쁜 옷을 사 입기도 했고 어떤 어른은 아이들 옷을 기워 입히기 위해 재봉틀 고르기에 신바람을 냈다.

대개 못살았던 때였고 노루 잡은 작대기만 삶아먹어도 죽어가던 사람이 살아나던 때였다. 굶주림이 극에 달했던 무렵 누구네는 솥 달아맨지가 며칠 째라 식구들이 죽은 듯이 누워지낸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렸다.

쌀이나 건건이 하다못해 잡곡 오쟁이까지 추렴해서 돌보았지만 형편이 그만그만한 마을 사람들의 돌봄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 이웃이 들을라 음식 끓이는 기척이나 숟가락 소리도 내지않고 밥을 먹을 정도로 인심마저 메말라 갈 그 시절의 일들인데 어떻게 기억에서 지울 것인가.

“이것 봐라. 밥 하는 연기가 없는 사람들 눈에 띄일까봐 이리 작게 만든 기란다”

어머니는 언젠가 뒤꼍에 있는 아주 낮게 숨어있는 굴뚝을 가리켰다.

“그라모 우리도 부자로 잘 살던 때가 있었네?”

반색을 하는 언니의 물음에 어머니는 더 침음해진 음성을 한숨처럼 지었다.

“하모. 그렇지만 부자 삼 대 안가고 거랭이 삼 대 안 간다는 말이 안 있나, 있는 집 업 떠나듯이 가운이 진한기라. 흥망성쇠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라 그리 위안하고 살아야제. 우리도 윗대에는 저기 실고개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배고픈 사람들한테 밥이나 죽을 끓여줌서 기민구제를 했던 적도 있던 집안이란다. 너거 할아부지나 아부지나 지난 날 영화에서 몬 벗어나고 사는 게 그게 병이제. 젖히다 안 되모 굽힐 줄도 알아야 되는데 그게 안 되니 사는 게 이리 팍팍한 삐알 길 아이가”

그 즈음 어느 날, 울밑에서 누군가와 소곤거리던 성남언니가 들어오더니 자는 양지를 깨우고 옷을 입혔다.

‘셍이야, 와 그라노. 안즉 오좀 눌때도 안됐는데’

언니는 잠꼬대로 꿍얼거리는 양지의 입을 얼른 막으면서 손을 끌었다.

안방에 들킬라 고양이걸음으로 마루를 건너는 것쯤은 익숙했다. 조심스럽게 대문을 지그려놓고 밖으로 나오니 팔짱을 낀채 깨금발을 놓고 있던 명자언니가 앞장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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